뉴요커 없는 뉴욕·도쿄진 없는 도쿄…‘서울’도 동병상련

“예술·유행 선도하던 英 ‘첼시’

부자들이 트렌디함 침몰시켜”

치솟는 임대료에 쫓겨나는 주민

베를린·밴쿠버 등 규제책 시행

“첼시는 한때 예술적 기질을 갖춘, 유행을 선도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부자들은 그 저렴함과 트렌디함까지도 모두 침몰시켜버렸다. (중략) 첼시에 사람이 사는 일은 점점 더 줄어들어 진기한 것이 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영국 런던의 유명 부촌 첼시에 대해 이같이 묘사했다. 이곳은 1960년대 루스 글래스라는 사회학자가 도시개발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을 관찰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말을 처음 갖다 붙인 곳이다. 지난해 기준 첼시의 평균 주택 가격은 195만 파운드(27억 원)로 전년(183만 파운드ㆍ25억 원)에 비해 더욱 올랐다. 가디언은 이러한 문제가 런던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다며 “런더너(런던시민)가 없는 런던이 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런던만이 아니다. 전 세계의 도시들이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갈등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해결한다는 명목으로 시중에 풀어놓은 막대한 자금이 저금리로 인해 마땅한 수익처를 찾지 못해 부동산으로 흘러들면서 기폭제가 됐다. 집값 상승으로 원주민이 뿌리뽑힌 탓에 뉴요커 없는 뉴욕, 도쿄진(도쿄시민) 없는 도쿄가 차츰 현실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6월 ‘인구 1000만 시대’의 막을 내린 서울 역시 그렇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도 빼놓을 수 없다. 인구 80만 명에 불과한 이 도시에는 연 1000만 명이 넘는 관광객이 몰리는데, 잇속에 밝은 건물주들은 주민들에게 장기 임대를 주는 것보다 관광객들에게 단기 임대하는 것을 택하고 있다. 에어비앤비와 같은 숙박 공유 서비스의 탄생은 이를 더욱 부추겨 암스테르담을 호텔화시켰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기존 주민들이 밀려나는 것을 특별히 일컬어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라 한다.

에어비앤비 호스트였던 시토 베라크루스는 “에어비앤비가 젠트리피케이션에 기여했다는 것은 명확하다”며 “오직 관광객에게 초점을 맞춘 비즈니스가 거주민과 연대 의식이 있던 지역 비즈니스를 대체했다”고 말했다. 가난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를 빼앗고, 체인점이 유입돼 특색없는 도시를 만들고, 이웃 간의 연대의식을 파괴하는 것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점으로 꼽힌다.

물론 반대 의견도 있다. 일각에서는 낙후된 지역에 중산층이 유입되면 교육 및 생활 수준과 치안이 개선되고, 범죄율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로레타 리스라는 학자는 새로운 주민의 유입으로 서로 다른 사회적 집단이나 민족이 교감하고 상호작용하는 것이 민주주의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젠트리피케이션 초기 단계에서는 새로운 일자리나 사업기회가 생겨 원주민이나 이주민 서로 경제적으로 ‘윈-윈’하는 결과를 낳는 경우도 많다.

문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긍정적 효과만을 낳는 단계에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세계 각국에서는 규제를 도입해 파급효과를 차단하려 부심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1200만 명의 방문객이 찾은 독일 베를린은 2014년 당시 집세가 2009년보다 56% 급등하자 에어비앤비 등을 통한 관광객 상대 단기 임대업을 금지해버렸다. 지난 5월부터 시행된 이 법을 위반할 경우 최고 10만 유로(1억2400만 원)의 벌금을 부과받는다.

이외에도 베를린은 원주민들의 주거권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규제 장치를 시행 중이다. 건물주가 세입자와 계약할 때 지역 평균 임대료의 10% 이상을 올려받지 못하도록 하는 ‘렌탈 브레이크’(rental brake)를 도입했고, 건물 리모델링 후 임대료를 올려받는 것을 막기 위해 ‘도시 보호 구역’을 지정해 호화 리모델링도 규제했다. 또 주택 공급 부족을 막기 위해 2026년까지 공공주택을 40만 채로 늘리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세금을 올리는 것을 대안으로 내놓기도 한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세입자가 애써서 살려놓은 상권을 아무 노력도 하지 않은 건물주가 강탈해가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세기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진보와 빈곤’에서 지적했듯 토지사유화와 그로 인한 불로소득은 빈곤을 낳고, 현재 그 여파는 글로벌 청년층을 ‘삼포세대’(연애ㆍ결혼ㆍ출산을 포기한 세대)로 만드는 데까지 이르렀다. 이에 우파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만은 토지보유세를 “가장 덜 나쁜 세금”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실제 캐나다 밴쿠버는 지난 8월 젠트리피케이션을 막기 위해 외국인 부동산 구매자에 대해 15%의 세금을 추가로 매기는 것을 도입했다. 

김성훈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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