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회고록 파문]宋 회고록 살펴보니…반기문과 ‘협력’ 문재인과 ‘충돌’

[헤럴드경제=유은수 기자] 최근 정치권의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의 회고록 ‘빙하는 움직인다’가 편파성 논란에 휩싸였다. 회고록의 기술이 반기문 UN 사무총장에 우호적이고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는 부정적이라는 주장이다. 반 총장과 문 전 대표가 언급되는 대목 전문을 비교한 결과, 저자의 논조보다는 관계의 성격부터 달랐다. 송 전 장관은 반 총장과 모든 일화에서 협력했으며, 문 전 대표와는 의견 충돌을 거듭했다.

문 전 대표의 측근인 김경수 더민주 의원은 18일 MBC 라디오에서 “(회고록이) 반 총장에 대해 대단히 우호적이고 문 전 대표에 대해서는 나오는 부분마다 부정적”이라고 지적했다. “송 전 장관이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겠지만, 오해를 살 수 있는 소지를 만들어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다.

[(왼쪽부터)반기문 UN 사무총장, 송민순 전 외교부장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

▶“어떤 난관도 깊은 물처럼 헤쳐나가는 지혜를 보여준 반기문”…외교무대의 ‘협력자’=회고록에 반 총장과 문 전 대표가 등장하는 대목을 비교한 결과, 언급된 일화에서 온도차가 읽혔다. 먼저 반 총장은 회고록에서 30회 이상 등장한다. 대부분 반 총장과 송 전 장관이 함께 2005년 9ㆍ19 남북공동성명에 앞서 북한 비핵화 범위 등을 두고 북ㆍ미ㆍ중ㆍ일 외교당국을 중재ㆍ설득하는 내용이다. 당시 반 총장은 외교통상부 장관, 송 전 장관은 차관보였다.

“반 장관과 나는 중국, 미국을 방문해 리 자오싱 외교부장, 라이스 국무장관 등과 만나 최대 잔존 쟁점인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집중 협의했다”, “9ㆍ19 공동성명은 베이징에서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에 사활의 무게를 두었기에 가능했다. 또 그해 9월 뉴욕에서 반기문 외교장관이 밀어붙인 외교장관 회담, 6월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평양 방문 등이 있었다”, “이 작업을 하면서 분단관리와 통일외교에 대해 내 나름의 의식을 갖게 해주고, 또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준 여러 선배들이 떠올랐다.…어떤 난관도 깊은 물처럼 헤쳐나가는 지혜를 보여준 반기문 외교부장관 같은 분들” 등의 대목에서 송 전 장관과 반 총장의 관계를 읽을 수 있다.

송 전 장관은 반 총장이 UN 사무총장으로 선출되는 과정도 기술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과 회담 자리에서 반 총장에게 왜 UN사무총장이 되고 싶냐고 묻자 반 총장은 ““(한국이) 미국과 UN의 도움으로 성공사례로 성장했는데 UN을 통해 국제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며 부시가 듣고 싶은 핵심을 짚었다”라고 송 전 장관은 묘사한다. 또 “노 대통령은 반 장관의 (UN) 사무총장 진출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하려고 했다”는 대목도 있다.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세 장면 등장, 모두 충돌=문 전 대표는 크게 3가지 국면에서 등장한다. 문제가 된 2007년 UN북한인권결의안 표결, 샘물교회 탈레반 납치사건, 10ㆍ4 남북정상선언 합의문 조정 등이다. 송 전 장관은 문 전 대표와 세 국면에서 모두 충돌했다. 인권결의안에 대한 입장을 정하는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 송 전 장관은 찬성했지만 대통령 비서실장을 비롯한 배석자들은 기권을 주장했으며, 김만복 전 국정원장이 북한의 의견을 확인하자고 주장하자 송 전 장관은 반대했지만 문 전 대표가 의견 확인으로 결론을 내렸다는 대목이 가장 크게 문제가 됐다.

또 2007년 샘물교회 교인들의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인질 사건에 대해 “내가 아는 한 어떤 국가도 테러단체에 그들을 협상 대상으로 인정하는 신임장을 써준 사례가 없었다. 그러나 안보정책 조정회의에서…문재인 비서실장도 (신임장을 쓰자는 데) 찬성했다”고 기술됐다.

10ㆍ4 남북정상선언 합의문 조정에 있어서는 “나는 직통전화로 평양 현지 팀과 교신을 관리하던 문재인 비서실장에게 두 가지를 반영할 것을 요청했다”며 한반도 비핵화 진전을 강조하고, 종전선언 주체로 ‘3자 또는 4자’ 대신 ‘관련 당사자’로 바꾸자고 제안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적었다.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은 김정일이 북한 협상팀에 지시한 사항이라 변경의 여지가 없다고 수용했다는 것이다“라고 송 전 장관은 설명했다.

남북정상회담 준비 과정에서 “대통령이 핵 문제를 얼마나 중시하는가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요청했으나 반응이 미온적이었다”는 대목도 있다.

송 전 장관이 머릿말에서 “내 기억은 1976년 판문점 8ㆍ18 도끼만행 사건에서 2005년 9ㆍ19공동성명에 이르기까지 30여년에 걸쳐 전개된 ‘한반도 분단과 북한 핵’이라는 줄기에 매달려 있다”며 “그 줄기의 굵은 가지를 이루는 순간들, 특히 2005년 1월 6자회담 수석대표, 2006년 1월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정책실장, 그해 12월부터 2008년 2월까지 외교통상부 장관을 맡은 때의 일을 집중적으로 되살려보았다”고 쓴 것처럼 회고록이 외교적 활동에 집중한 만큼 당시 ‘외교 동업자’였던 반 총장 언급이 많을 수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다

송 전 장관은 회고록에 대한 편파성 의혹, 진위 공방에 대해 18일 기자들과 만나 “사실에 자신 없는 사람이, 30년 공직에 있었던 사람이 소설 같이 썼겠느냐”고 불쾌감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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