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톡톡]‘구르미’를 통해본 사극 트렌드

[헤럴드경제 =서병기 선임 기자]‘구르미 그린 달빛’의 마지막회 시청률은 22.9%(닐슨코리아)였다. 화제성은 그 이상이었다. ‘구르미’는 앞으로의 사극 흐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봐야 한다.

과거 사극의 가장 큰 흐름은 정통사극에서 퓨전사극(팩션사극)으로의 전환이었다. 한동안 KBS에서는 정통사극의 흐름이 끊겼었다.

그러나 한차례의 반작용이 있었다. 2014년 제작된 ‘정도전’은 퓨전사극의 틈바구니속에 죽어가던 정통사극을 다시 살려냈다고 할만하다. 고품격 정치사극이었다.

그럼에도 그 이후 나온 ‘징비록’과 ‘장영실’ 등은 정통사극의 파워를 그리 강력하게 보여주지는 못했다.

사극은 정통대하사극으로 대변되는 ‘역사적 진실’이냐, 퓨전사극으로 대변되는 ‘허구’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현재성이 가장 큰 주제가 된 것이다. 과거를 빌어 현재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구르미‘도 이의 연장선으로 보인다.

‘구르미’가 젊은이들의 로맨스만 보여줬다면 박보검과 김유정이라 해도 이 정도로 강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청춘들이 궁에서 연애만 한다면 후반의 긴장감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런 것은 이미 사극 F4 ‘성균관 스캔들‘과 사극 로맨스 ‘해를 품은 달’을 통해 소비됐다.

‘구르미’의 16회를 보면 대사의 현재성을 충분히 맛볼 수 있다. 사회성 짙은 드라마였다. 백성이 내린 왕은 자신과 백성을 똑같이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백운회 같은 조직은 현대 정치권에서도 이슈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우리 시대로 해석하면 박보검과 진영은 기득권을 가진 대학생이다. 왕세자인 박보검은 다이아몬드수저이고, 진영도 엄청난 부르주아다.

그런데 기득권 세력이지만 기득권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세계는 끊임없이 방해요인(정적)을 제거하는 등으로 싸워야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영의정 김헌(천호진 )과 그의 오른팔과 왼팔인 김의교(박철민) 김근교(방중현)가 그런 식으로 권력을 유지시켰다.

하지만 박보검(이영)은 친구와 커서도 파벌이나 정치적 입장에 따라 적이 아닌 인간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순수파다. 이영은 홍라온(김유정)을 알게되면서 사적인 관계가 이들 사이를가로막는 현실을 경험하면서 백성의 현실을 알게되고 정치적으로도 각성하게 된다.

김윤성 역의 진영도 부조리한 권력에 대한 개혁의지를 가지고 있으며,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부모와 조상에게 돌을 던지는 행위일 수도 있지만, 어떻게 살아야 하고 무엇이 정의인지를 고민하는 선비였다. 진영은 마지막까지 정치적 올바름을 실천했다. 뿐만 아니라 김윤성은 홍라온 대신 칼을 맞고 죽기 직전 짝사랑의 대상인 홍라온에게 “울지 마십시오. 여인을 울리는 시시한 사내로 남고 싶지 않습니다.. 당신을 그리는 순간 행복했으면 그만입니다”라고 말하며 또 한명의 창의적인 짝사랑 로맨티스트 탄생을 알렸다.

다만 홍라온이 후반 사회성 짙은 이야기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서 여주인공 김유정은 뒤로 갈수록 존재감이 약화됐다. 멜로로만 존재하는 여주인공은 사건에서는 늘 뒤에 있을 수밖에 없다.

라온이 역적으로 몰렸던 홍경래의 여식이라는 사실은 이영-라온 러브라인의 장벽으로만 기능했던 것 같다. 최종회 말미에 라온은 왕이 된 이영에게 “전하가 만들어갈 세상을 제가 살짝 엿본 것”이라고 말한다. 이 대사는 “전하가 만들어갈 세상을 이제는 저와 함께 만들어 가시죠”라고 바꾸면 어떨까?

어쨌든 ‘구르미’이후의 사극도 현재성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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