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분도, 역할도 없어진 친박…‘버티기’ 뿐인 투쟁 지속 왜? 관건은 ‘당 해산’

[헤럴드경제=이슬기 기자] 친박(親박근혜)계가 대안 없는 생존 투쟁에 돌입했다. 유력 대선후보 영입을 통한 상황 반전이나 여론의 침잠(沈潛)을 기대하기에는 ‘최순실 게이트’의 파장이 너무 크다. 친박의 대표주자로 거론되던 반기문 유엔(UN) 사무총장마저 유탄을 맞고 침몰을 시작한 지 오래다. 그럼에도 “당장은 당권을 내려놓을 수 없다”는 것이 친박 핵심들의 의지다.

[사진=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새누리당 비상시국회의 실무자 회의가 열리고 있다. 안훈 기자 rosedale@heraldcorp.com]

비박(非박근혜)계 주도 비상시국위원회의 주장대로 ‘당 해산 후 재창당’ 작업이 진행되면 친박계는 사실상 ‘본가(새누리당)’ 밖으로 축출될 수밖에 없다. 향후 당권을 넘겨주더라도 당의 외형만은 유지해야 ‘보수 제1당’의 일원으로 남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소수의 강성 쇄신파가 자괴감을 견디지 못하고 먼저 탈당해준다면 다른 활로가 열릴 가능성도 있다. 친박의 생존법이다.

18일 정치권에 따르면 친박계의 ‘버티기’는 비상시국위원회의 당 해산 주장 때문으로 풀이된다. ‘최순실 정국’에서 친박계는 이미 명분과 역할을 잃었다. ‘최순실 특검법’은 정진석 원내대표를 중심으로 원안 처리됐고, 국정조사 특별위원장은 김무성 전 대표의 최측근인 비박계 김성태 의원이 맡았다. 이정현 대표의 ‘내년 1월 21일 조기 전당대회론’에 대한 비토도 거세다.

김 전 대표와 남경필 경기도지사, 원희룡 제주도지사,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비박계 잠룡들은 전날(17일) 저녁 열린 정 원내대표 초청 만찬에서 “이 대표는 조기전대 계획을 철회하고 즉각 비상대책위원회로 전환하라”고 입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날 새누리당 사무처 당직자들은 국ㆍ실장급 당료까지 모인 비상총회를 열고 이 대표의 신속한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친박계는 박 대통령의 ‘엘시티(LCT) 비리 엄정 수사’ 지시를 기점으로 목소리를 키우며 되레 비박계를 압박했다. “박 대통령의 수사 지시는 정상적인 국정 수행이며, 비박계의 지도부 사퇴 요구는 해당 행위”라는 것이 골자다. 사면초가에 몰린 친박계와 청와대가 ‘엘시티 수사’로 숨은 지지층을 결집하는 한편, ‘사즉생(死卽生)’의 반격을 하려 한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결국, 정치권의 중론은 “친박계가 사수하려는 마지노선은 당 해산”이라는 쪽으로 모인다. 새누리당이 분당(分黨) 하더라도 그 형태는 강성 쇄신파 일부의 탈당이어야만 하며, 시스템과 전통을 가진 본가의 안방만은 지켜야 후일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남 지사와 비박계 김용태 의원은 각각 “중대결심을 고민 중”, “행동에 후회는 없어야 한다”며 탈당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비박계 일각에서는 친박계의 ‘조기전대 시 친박 불개입 및 새 대표에 대한 전폭적 지지 선언’ 제안도 의심스럽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박계 한 의원은 “친박계 제안의 속뜻을 알 수 없다”며 “친박계가 1월 조기전대에서 특정 비주류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고, 당 대표와 대선후보로 키우며 지분을 확보하려는 꼼수는 아닌지 의심되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yesye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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