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나라냐’ ‘하야가’…집회송, 190만 촛불 하나로 묶어준다

과거 운동권만 향유 노래서 발전
‘길라임’ 가명 풍자 드라마OST도
“밝고 신나고…평화시위로 만들어”

“하으야~ 하으야~ 하으야~” 지난 26일 광화문광장과 청와대로 향하는 길목 곳곳에서 130만 명(주최 측 추산)의 시민들이 함께 부른 집회 노래의 첫 소절이다.

해당 곡은 가수 윤민석 씨가 만든 ‘이게 나라냐 xx’로 윤 씨가 “요 근래 벌어지고 있는 사상 초유의 참담한 시국에 정말 많은 분들이 글과 노래, 영상물, 시국선언 등으로 함께 하는 모습을 보면서 굳이 나서지 않아도 되겠다 생각했다”며 “어느덧 30년이나 해 온 버릇을 버리지 못한 탓인지 결국 또 이렇게 꼬물꼬물 노래를 만들게 됐다”며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게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했다. 해당곡은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이 함께 부르자고 제안하며 공식 집회노래가 됐다.

지난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에서 10대 청소년들이 촛불을 들고 가수의 공연에 환호하고 있다.

흥겨운 가락과 재밌는 가사의 집회 노래들이 시위에 참가한 시민들을 더욱 단결시키고 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소재로 윤 씨가 만든 ‘이게 나라냐 xx’를 비롯해 ‘대한민국 헌법 1조’,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등의 집회 노래들은 이번 집회에 참여한 150만의 시민들이 모두 따라부르는 공식 ‘집회송’이 됐다. 매 주말마다 집회에 참가한다는 박소영(22) 씨는 “짧은 가사가 계속 반복돼서 외우기 쉽고 멜로디도 중독성 있어서 주말에 집회 왔다가면 평일 내내 흥얼거리고 있다”며 “집회현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두 함께 따라 부를 수 있어서 더 하나되는 느낌이 나고 좋았다”고 말했다.

집회 문화가 음악을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기존의 집회 노래는 과거 운동권 세대들에게만 향유되는 경향이 있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 등은 80년대 민주항쟁 이후의 세대들에게 낯설거나 당시 적극적으로 시위에 참가하지 않았던 시민들에겐 함께 따라부르기 어려운 곡이다. 하지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해 매주 많게는 100만 명이 넘는 시민들이 광화문광장으로 쏟아져 나오면서 지금 집회 노래는 남녀노소 모두가 함께 부를 수 있는 곡으로 정해지고 있다. 기존 대중가요를 개사하거나 친숙한 멜로디에 가사만 붙여 누구나 쉽게 따라부를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캐럴인 ‘펠리스 나비다드’의 가사를 바꿔 ‘그네는 아니다’를 , ‘아리랑 목동’을 개사한 ‘하야가’가 그 예다.

시국을 풍자하는 곡 선정도 눈에 띈다. 대통령이 병원 진료 당시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여주인공인 ‘길라임’이란 가명을 사용한 사실을 두고 해당 드라마의 OST인 ‘나타나’를 부르거나, 많은 대학생들은 빅뱅의 ‘뱅뱅뱅’이나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 등 일반 가요를 다같이 함께 부르기도 한다. 해당 곡들의 경우 직접적으로 사회비판을 하는 메시지는 없지만 많은 시민들이 한 곳에 모인 상황 속에서 함께 부르는 데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가고 있다.

전문가들은 현 시국에 대해 분노한 시민들이 광장에 모인 상황에서 집단 가요는 더욱 큰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한 음악평론가는 “비장한 분위기의 과거 80년대 민중가요와 달리 밝고, 신나는 노래를 시위대들이 부르면서 집회노래들이 더욱 문화제 성격이 강한 평화시위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며 “다양한 세대와 집단의 시민들이 참가하기 때문에 소수 집단만이 향연하는 노래가 아닌 모두가 즐기는 노래가 불리고 있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구민정 기자/korean.gu@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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