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광장이 열어준 ‘대한민국 리빌딩’

5차 주말 촛불집회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1분간의 소등이었다. 광장에 모인 150만개의 촛불이 일제히 꺼지며 어둠과 정적이 흘렀다. 마치 어두운 터널을 지나는 지금의 암울한 시국을 보는 것 같았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사회자의 멘트로 일제히 촛불이 켜졌다. “바람 불면 촛불도 꺼진다”는 한 집권당 의원의 말을 비웃기라도 하듯 진눈깨비가 내려 체감온도가 뚝 떨어진 날씨에도 촛불은 꺼지지 않았다. 어둠을 물리치는 빛의 힘은 결코 ‘바람앞의 등불’ 처럼 나약하지 않음을 만천하에 선포했다.

“이게 나라냐”고 분노하는 광장의 외침은 임진년(1592년) 4월 왜군에게 쫓겨 몽진하는 선조에게 향했던 백성의 소리 같았다. 길가의 백성들은 그때 “이제 누굴 믿고 살란 말이냐”고 외쳤다. 평양에 당도한 선조는 서애 유성룡이 “이제 힘을 모아 왜적과 대적해 볼 만하다”고 간언했지만 또 몰래 피란길을 나섰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성내의 민중이 들고 일어났다. “우리만 왜놈들의 어육을 만들 셈이냐?”며 분노의 함성을 질러댔다.

충신과 아첨배를 구별하지 못하는 선조의 인사도 박 대통령과 닮아있다. 임금이 버리고 간 한양에서 왜적과 싸워 크게 이긴 신각을 목 베라 하고 도망쳐 온 장수 김명원을 곁에 둔 일, 이순신을 시기해 없애려 한 것 등이 모두 그러하다.

조선을 건국한 정도전은 창업동지인 이성계에게 제안한다. “혈통으로 계승되는 임금이 계속 좋은 임금이란 법은 없으니 국가의 주요 정책은 경쟁을 통해 검증되는 신하들에 맡기자.” 정도전의 재상중심 신권정치론은 이성계의 5남 이방원에게 가로막혀 좌절됐지만 아버지의 후광으로 대통령에 오른 박근혜의 참담한 실패를 보면서 그의 사상을 다시금 주목하게 된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미래가 대통령 한 사람에게 달려 있게 되는 위태로운 권력구조는 이제 바꿔야 할 때가 됐다.

사회심리학자 허태균 교수는 그의 저서 ‘어쩌다 한국인’에서 “어떤 대형 비리나 사고가 발생했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 문제에 책임 있는 나쁜 놈을 심판하는 식으로 문제에 접근한다”고 말한다. 즉 문제의 원인을 사람으로 귀결시키지, 시스템의 문제라고 생각하고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노력은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의에 대한 심판은 잘하는 데 비해 구조에 대한 개혁은 끈질기게 이어가지 못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세월호 사태에서 보듯 죄를 지은 사람들을 어느 정도 심판하고 나면 개혁의 동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얘기다.

정도전이 고려라는 낡은 틀을 부수고 조선이라는 새 틀을 세워야 겠다고 결심한 곳은 나주 유배지였다. 권문세가들의 곳간은 터질 듯한데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 조차 없을 정도로 비참한 현실 앞에 절망했다. 그 절망이 분노를, 분노가 열정을, 열정이 힘을, 힘이 혁명을 낳아 마침내 새 나라를 창업할 수 있었다. 광장이 열어준 국가 대개혁의 절호의 기회를 이번에도 살리지 못한다면 촛불혁명은 미완에 그치고 말 것이다. ‘대한민국 리빌딩’을 요구하는 광장의 소리에 응답하는 사람이 차기 정권의 리더가 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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