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어이없는 법치에 대한 헌법 사용설명서

“모르겠다”, “기억이 안난다”는 증인들. 최순실 없는 ‘최순실 청문회’.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출석요청서와 동행명령장을 받지 않으려는지 행방이 묘연하다. ‘무슨 저런 법이 있냐’며 분통이 터지지만, 법이 그렇다. 법을 알면 칼자루를 쥐게 되지만, 모르면 칼날을 잡기 십상이다.

청문회에서 말 잘못(?)하면 검찰이나 특검수사에서 불리할 수 있다. 증인들 입장에선 욕 좀 먹는 게 법적 책임이나 처벌의 빌미를 주는 것보다 낫다. 위증은 처벌할 수 있지만, “모르겠다”, “기억 안 난다”는 데는 적용하기 어렵다. ‘정당한 사유’ 없이 청문회 안 나오면 벌을 받지만, ‘사유’가 있으면 괜찮다. 법을 알면 사법당국이 위법을 입증해야 하지만, 모르면 사법당국에 무죄를 입증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박근혜 정부는 유독 법(法)을 강조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장과 초대 총리후보 지명자는 헌법재판소장을 지냈고, 초대총리는 검사장 출신이다. 대법관 출신 총리후보자도 있었다. 현 총리도 법무장관 출신이다. 실세 대통령비서실장도 검찰총장과 법무장관을 지낸 ‘법통(法通)’이다. 대통령의 총애를 한 몸에 받던 전 민정수석은 사법고시 최연소 합격 기록에 빛나는 천재 검사였다. 판검사하다 변호사, 국회의원하는 것도 모자라, 장관까지 한다.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하다 총리하는 나라다.

판검사들이 나라를 이끌면 완벽한 ‘법치’가 이뤄질까? 박근혜 정부는 일종의 ‘법란(法亂)’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전직 부장판사ㆍ검사장의 비리가 청와대로 번지며 최순실이 드러났다. ‘법의 수호자’여야 할 대통령까지 ‘법치 유린’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법란은 결국 헌법을 소환했다. 국가시스템의 마지노선인 헌법이 해법이 됐다는 뜻이다.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은 그 시작이다. 가결되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심판으로 매듭짓게 된다. 탄핵심판에서는 대통령이 직무수행이 어려울 만큼 심각하게 법률을 위반했는지 판단하게 될 전망이다.

법 중의 법은 헌법이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런데 그 앞에는 전문(前文)이 있다. 전문은 국가권력의 최고의 원리로 모든 법령에 대해 우월한 효력을 갖는다. 헌법재판소도 헌법전문의 규범적 효력을 인정했다. 법률이 헌법전문에 위반하면 무효라는 뜻이다. 내용은 이렇다.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가장 먼저 등장하는 실체는 나라가 아닌 국민이다. 대한민국 기본시스템의 형상은 헌법이지만, 이를 구성하는 질료는 국민이다. 국가의 형태는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등으로 바뀌었지만, 이를 구성하는 주체는 국민이란 뜻이다. 헌법 전문은 민주개혁과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려는 국민의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3.1운동과 4.19는 국민이 그 권리를 직접 행사한 사례다.

인권과 민주주의의 방패로써 법은 반드시 준수되어야 한다. 하지만 부패한 권력의 방패로 법이 악용될 때는 헌법정신에 담긴 국민의 창으로 깨뜨릴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헌법에 대한 관심이 높다. 헌법 전문과 그에 담긴 헌법정신도 재조명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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