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그시절’ 내가 아는 대선후보-홍준표]“정면돌파형 승부사 기질 남달랐다”

- 시인 정봉렬씨, 고대 행정학과 72학번 동기

[헤럴드경제=이태형ㆍ홍태화 기자]“입학해서 처음 만난 홍 후보는 검정 고무신을 신고 철 지난 외투를 입고 다니는 촌놈이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후보와 고려대 행정학과 72학번 동기인 시인 정봉렬씨는 홍 후보의 첫인상을 이렇게 떠올렸다. 정 씨는 ‘홍트럼프’라는 별명이 붙은 홍 후보가 대학생 때는 다른 모습이었다고 회상했다.

정 씨는 “홍 후보는 말을 함부로 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그래도 입을 열면 유머가 있었고, 비유를 잘했다. 속담이나 사자성어를 활용하고 언어구사가 기발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고 말했다.


스킨십이 부족해 술자리나 모임에 참석하면 경직되기도 했다. 가식이 없어서 오해도 많이 샀다. 그러나 강단이 있었다. 정 씨는 “하루는 버스를 타고 가는데, 불량배가 행패를 부렸다. ‘일어나서 당신 뭐하는 거냐’고 야단을 치더니 기사에게 안암동 로터리에 있는 파출소에 버스를 세우라고 하더라. 불량배는 문이 열리자마자 도망 갔다”며 일화를 소개했다.

축제 기간 법대에서 열린 형사 모의재판에서도 그의 강단을 엿볼 수 있다. 검사 역할을 맡는 사람은 사법시험에 떨어진다는 징크스가 있어서 다들 꺼릴 때 홍 후보가 자처했다. 당시 사회 저항의 표현이었던 스트리킹(옷을 벗고 거리를 질주하는 행위)에 공연음란죄를 적용하는 검사 역할이었다. 정 씨는 “지도교수와 현직 공안검사인 선배가 참석한 자리에서 대본에도 없이 당시 금기어인 ‘반체제’라는 단어를 쓰는 등 거침이 없었다”고 기억했다.

‘대학생 홍준표’는 일을 계획하면 앞에 나서서 주도하는 스타일이었다. 정 씨는 “1975년에는 동아일보 광고사태가 있었다. 정부에서 동아일보에 광고를 못 하게 하면서 백지 광고가 실린 적이 있었다. 그 때 홍 후보가 주도해서 중앙도서관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모금을 해 신문사 편집국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홍 후보의 승부사적 기질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고 정 씨는 말했다. 그는 “복잡한 문제를 단순하게 하는 장점이 있고 핵심에 접근하는 능력이 있었다”며 “술자리든지 잔디밭에서 논쟁이 일어나면 정면돌파식으로 문제에 바로 접근하고 단순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고 말했다.

또 홍 후보는 항상 당당했다. 정 씨는 “한번은 맹자에 나오는 대장부라는 개념을 두고 항산항심(恒産恒心, 경제력이 뒷받침돼야 마음이 변치 않는다)이라고 했더니 무항산이라도 항심해야 진정한 대장부 아니냐고 말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고 말했다.

학창시절 양복이 없던 홍 후보는 검사 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양복을 입고 구두를 신었다. 정 씨는 “지금은 고쳤다고 하는데, 넥타이를 꽉 매지 못하는, 어디에 구속받지 않는 기질이 있었다”며 “뼛속까지 서민”이라고 말했다.

th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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