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촌탁(忖度), 하시겠습니까?

낯선 단어 하나가 요즘 일본 열도를 뜨겁게 하고 있다. 일본인들은 이 말이 단연 ‘올해 최고의 유행어’가 될 거라고 장담한다. 촌탁(忖度). 일본어로 손타쿠(そんたく)로 읽히는 이 말은,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의미다. 국어사전에도 ‘다른 사람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림’으로 나와 있다.

상대방이 구체적으로 어떤 지시나 명령을 내리지 않았지만 스스로 알아서, 분위기와 전후맥락을 짐작해 상대가 원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것을 뜻한다. ‘알아서 모신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우리도 자주 접하지 못한 말이지만, 일본인들에게도 사실 얼마전까진 매우 생소한 단어였다고 한다. 혹시나 해서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교포 지인에게 물었는데 그 역시 “이번에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번’이라 함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부인 아키에 여사 스캔들 논란을 말한다.

‘아키에 스캔들’은 아키에 여사가 명예교장으로 있던 학교법인 모리토모(森友) 학원이 국유지를 감정평가액보다 무려 8억엔(약 80억원)이나 싼 가격에 매입한 과정에 정부와 아키에 여사가 연루됐다는 의혹이다. 한 야당 의원이 “재무성이 촌탁을 한 게 아니냐”고 추궁하자 아베 총리가 “촌탁이 작동한 여지는 분명 없었다”고 답하면서 화제의 단어로 떠올랐다. 즉 아베의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재무성 공무원이 아베의 의중을 헤아려 해당 학원에 특혜를 준 게 아니냐는 내용이다. 어렵고 낯선 단어를 외신기자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일본인 통역은 ‘촌탁’을 영어로 바꿀 말이 없다며 “read between the lines(행간 읽기)”라고 했다는데, 미묘한 의미를 채우기엔 모자란 감이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Sontaku(손타쿠)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진 않지만, 정부와 민간 부문에서 다양한 형태로 횡행하고 있다는 것은 모든 일본인들이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아베 시대의 일본을 설명하는 데 이보다 더 강한 울림을 주는 말은 없다”고 단언했다. 도쿄신문은 “촌탁이 일본 정계 뿐 아니라 문화계, 언론계, 학계를 막론하고 널리 퍼졌다”고 지적했다. “일본 특유의 애매함을 상징한다”, “다수파에 달라 붙으려는 일본인의 나쁜 습관이 나온 것” 등의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떨까. 비뚤어진 의미로 퇴색한 ‘촌탁’이 비단 일본인 기질에 기인한, 일본 사회에만 만연하는 관행일까. 불통의 권력자에 촌탁하는 공직자와 위정자, 그리고 그 결과로 추한 민낯이 드러난 각종 비위와 부정을 우리는 수없이 봐 왔다. 우리 역시 일본과 마찬가지로 정치, 경제, 문화, 언론계 등 민관을 불문한다. 투명하지 않은 조직일수록, 리더의 소통 지수가 낮을수록 촌탁의 정도는 더 심하다.

대선 본선 레이스가 본격 스타트를 끊었다. 이제 한 달 남짓 남았다. 일본의 한 매체는 “‘촌탁 정치’가 횡행하기 시작하면 브레이크를 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했다. 내 귀를 즐겁게 해줄 사람만 등용하고 만나는 대통령을 또다시 보고 싶진 않다.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이 윗분의 심기나 살피고 있는 ‘촌탁 사회’가 될지, 상식이 통하고 투명한 건강 사회가 될지 결정된다. 이제 정말 우리 손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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