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호텔의 역사, 전환점 만든 ‘인디언 클럽’

[헤럴드경제=함영훈기자] 1963년은 한국호텔 역사의 중요한 전기였다. 1950년대까지는 방을 빌린다는 의미의 대실료 개념으로 숙박비를 받았기 때문에, 호텔은 ‘잠자는 곳’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1963년 제3공화국이 들어서면서 외자도입ㆍ수출주도형 경제개발에 적극 나서면서 국제교류가 잦아졌다. 이 때 한국을 대표하는 호텔들이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건설되기 시작한다.

1963년 그 시절 호텔리어

정부 방침 직후 등장한 신개념 신축 호텔의 선두주자는 워커힐이었다. ’국제교류‘라는 제3공화국의 키워드에 따라 설립된 워커힐은 사실상 국책 호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 손님들이 대거 워커힐에 모셔졌다.

일제 시대 세워진 롯데와 조선호텔은 국제화의 서막이라는 시대 흐름에 발맞춰 리뉴얼에 나섰다.

호텔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1973년엔 삼성이 최고를 표방하며 신라호텔을 지었고, 1976년엔 더 플라자가 최신을 강조하며 서울시청 광장에 문을 열었다.

1960년대 중후반 부터 국빈, 외국 재계 손님들이 단골로 휴식을 취하던 워커힐에는 새벽부터 진풍경이 벌어진다.

아차산 아래 숙소에서 합숙하던 호텔리어들이 멀리서 보면 인디언 축제 때의 화려함이 느껴지는 제복을 입은 채, 근무지인 워커힐 산등성이를 1열 종대로 줄지어 올라가는 모습이었다.

서울시민들은 이들을 ’인디언 클럽‘이라고 불렀다. ’인디언 클럽‘은 워커힐을 일군 산증인들이다.

이들은 ’잠만 자던‘ 기존 한국 호텔의 컨셉트를 맛집이자 커피숍, 휴식처, 문화오락을 즐기는 장소 등을 겸하는, ‘버라이어티 라이프스타일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

물론 1888년 일본인이 인천에 세운 대불호텔, 1902년 독일여인이 정동에 세운 손탁호텔, 일본 침략 이후 부산과 신의주에 세워진 국영 철도호텔, 서울철도호텔에서 이름이 바뀐 조선호텔이 있었고, 1959년 한차례 리모델링 바람이 불었지만, 현대적 의미 호텔의 초석을 닦은 것은 ’인디언클럽‘을 비롯한 1963~1973년 호텔리어들이다.

‘인디언클럽’ 멤버와 그 후배들

1980년대 이후엔 호텔 체인화를 통한 급속한 세계화가 이뤄져 오늘에 이른다.

70세를 훌쩍 넘긴 ‘인디안클럽’이 식목일인 5일 다시 옛 직장 워커힐을 찾아 나무를 심었다. 인디언클럽 13명은 이날 2017 국가브랜드대상을 수상한 워커힐의 번영을 기원하는 의미로 한국 소나무인 ‘적송’을 심었다.

50년 이상 이어온 ‘인디안클럽’ 회원들은 관광산업발전에 기여했던 경험을 살려 관광관련 학과가 있는 대학과 산학협동체결을 통해 특강과 후학들의 진로에 대한 멘토 역할을 해나가고 있다. 또 관광호텔 및 외식산업체 설립과 경영진단ㆍ자문, 직원교육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장건영 회원(73ㆍ워커힐 객실 예약과 출신)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함과 동시에 워커힐 구성원 모두가 초심으로 돌아가 도약과 발전을 이뤄내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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