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 Data] 복덩이 넷째 딸 ‘인보사’ 성공 거둔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 바이오 꽃길 걷는다

[헤럴드경제=최정호 기자] “‘인보사’의 생년월일인 981103은 나에겐 또 다른 성공의 숫자가 되었다”

19년의 개발기간 끝에 마침내 양산을 눈 앞에 둔 ‘인보사’(세계 최초의 퇴행성관절염 세포유전자치료제) 생산 기지를 방문한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밝힌 감회다.

세포유전자 치료라는 개념조차 생소했던 1998년 11월 3일, 이 회장은 책상 위에 놓인 보고서 한 장에 깊은 고민에 빠졌다. 퇴행성관절염에 치료 효과가 있는 유전물질이 담긴 세포를 주사제로 만들어보겠다는 내용의 이 보고서는 1000억원이 넘는 직접 개발비, 그 수십배에 달하는 생산설비 구축비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연 매출 6조원, 영업이익은 수백억원 수준이던 당시 코오롱에게는 감내하기 어려운 부담이었다. 최종 개발에 실패할 경우 그룹 전체가 동반 몰락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까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회장이 장고 끝에 내린 결론은 ‘도전’이었다. 연구원들이 힘들게 찾아낸 관절염 치료 효과가 있는 유전물질 ‘TGF-β1’을 연구실 샘플 창고에 묵혀두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사업가의 본능이었다.

그리고 그는 바로 미국으로 날라가 ‘티슈진’이라는 회사를 세웠다. 개발 초기부터 세계 시장 공략을 염두에 둔 전략이었다. 또 유전자치료나 유전공학에 보수적인 국내 법과 세간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연구원들이 최고의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기를 원하는 배려가 담긴 결정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도전은 결코 순탄하지 못했다. 이 회장은 “바이오라는 가보지 않은 길을 가다보니 두렵기도 하고 어려움도 많았다”며 “어려움 속에서 기회를 찾았고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사업 초기 험란했던 길을 떠올렸다.

이후 2000년 티슈진아시아(현 코오롱생명과학)를 설립하고, 2001년 관련 특허들을 취득함과 동시에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임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2013년 마침내 국내 임상 3상 시험에 들어갔고 이듬해 환자를 대상으로 투약, 기대 이상의 약효를 확인 할 수 있었다. 연 1만도즈의 ‘인보사’ 생산 설비가 만들어지고, 상업화에 착수한 것도 이때 부터다.

제약 왕국인 일본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세계적으로도 매출 50위 권으로 꼽히는 미쓰비시다나베제약과 맺은 50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은 이 회장과 코오롱의 과감한 도전에 대한 보상의 서막이다. 1000억원 수준에 머물러 있던 국내 제약 산업의 수출 시장을 단숨에 5배 이상으로 늘린 것이다.

코오롱생명과학 관계자는 “통상적으로 신약 개발에는 평균 13년 6개월의 시간과 약 1조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될 정도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지만, 성공 확률이 낮아 리스크가 높은 분야”라면서 “지난 17년 동안 불모지였던 국내 바이오 시장에서 꾸준히 투자해, 인보사의 성공을 만들었고, 이제 세계적인 유전자 치료제 개발회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미 가동에 들어가 매년 1만도즈의 인보사를 쏟아내고 있는 충주공장에서 10배 증산, 연 10만도즈 생산 투자 결정을 밝힌 이 회장은 ‘인보사’와 19년이라는 긴 세월을 함께한 임직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내 4째 딸 같은 인보사에 내 인생의 3분의 1을 투자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만큼 ‘인보사’의 성공과 바이오 기업 코오롱의 미래를 위해 끝까지 함께할 각오가 되어 있다”고 꽃길의 서막을 알렸다.

<데이터>

- 4억명 : 인보사로 치료가 가능한 전 세계 퇴행성 관절염 환자 추정치

- 981103 :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인보사’ 사업보고를 처음 받은 날

- 2780억 달러 : 2020년 전 세계 바이오산업 시장 규모 추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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