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병기 연예톡톡]‘혼술남녀’PD 사망사건, 어떻게 제작환경을 개선할 것인가?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지난해 사망한 tvN 드라마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인 이한빛 PD 사건과 관련해 아직 문제의 본질에 접근하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

CJ E&M측은 “故 이한빛님 사망에 대한 경찰의 조사 이후 그동안 유가족과 원인 규명의 절차와 방식에 대해 협의를 해왔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합니다”면서 “당사 및 임직원들은 경찰과 공적인 관련 기관 등이 조사에 나선다면 적극 임할 것이며, 조사결과를 수용하고 지적된 문제에 대한 개선방안을 마련하는 등 책임질 것입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경찰에게 공을 넘긴 이런 상황이 문제를 쉽게 해결해 주지 못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번 사건은 이 PD의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가 추정해낸 “55일 동안 그가 쉰 날은 단 2일뿐이다”는 말에 주목해, 드라마의 사전제작제가 또 다시 화제가 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중국에 검사받기 위해 만들어진 사전제작제가 우리의 열악한 드라마 제작환경을 해결해줄 대안이 될 리가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우리에게 맞는 사전제작제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열악한 작업환경, 혹독한 시스템을 개혁하는 일이다. 제작관계자조차도 우리의 드라마 제작환경에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알고 있음에도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드라마를 만드는 방법과 일정 등의 키를 쥐고 있는 측은 방송국이다. 방송국이 제작사(또는 제작진)에 드라마를 제작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적 여유를 주면 된다. 하지만 실시간에 가까운 시청률 측정 시스템에서 캐스팅만을 놓고도 막판까지 저울질을 하게 되니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제작 초중반에 무리를 하지 않으려고 반사전제작으로 진행할 경우도 1, 2회의 시청자 반응이 좋지 않으면 기촬영분의 칼질에 들어가고 인력을 교체한다. 이미 찍은 촬영분량을 버리기도 하니 제작일정에 무리가 오고 제작하중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혼술남녀’도 16회 중 8회분을 사전 제작하려고 했으나 외주업체와 스태프를 교체했기 때문에 제작기간이 대폭 축소돼 심각한 노동 강도를 피할 수가 없었다. ‘혼술남녀‘는 외주제작이 아닌 내부 제작인데도 이런 문제를 컨트롤 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혹독한 시스템이 존재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생방에 가까운 드라마 제작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문화다. PD들도 잠을 안자는 걸 각오한다. 이병훈 PD는 아내가 드라마 연출을 그만하라고 한다고 한다. 이유는 현장에서 숨질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이제 이 부분에 대한 안전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이건 한 사람의 힘으로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당장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치자. 그렇다면 현재로서는 노동 강도만 문제 삼을 게 아니라 노동 분위기도 중요하다. 과로를 해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하기 싫은 일을 하는 건 큰 차이가 있다.

그 점에서 대안은 PD 중심제다. 예능이긴 하지만 나영석 PD와 함께 일하고 있는 후배PD와 작가들을 다 만나봤는데, 서로 무한신뢰의 바탕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똑같은 CJ E&M 내부이지만, ‘혼술남녀’와 나영석PD 사단은 제작 환경(분위기)이 달랐다는 것이다. 드라마를 만드는 신원호PD 팀도 나 PD 사단과 비슷하다.

방송국에서 까라면 깐다는 식의 상명하복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이 PD 사망 사건 대책위원회가 “이 PD의 사망 뒤에는 언어폭력과 괴롭힘이 있었다”라고 주장하는 걸 보면, 방송국이 PD 중심제를 좀 더 관심있게 관리, 지원해야 한다.

드라마 제작 PD가 잠을 자건 못자건 알 바 아니라는 식의 태도만으로도 방송사의 갑질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예로 든 나영석 PD 사단 처럼 좀 더 인간적인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다면,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이 PD의 죽음과 같은 사고는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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