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후보는 없고 스피커만 남은 선거유세

1970~80년대 이른바 ‘3金시대’에 선거 유세장은 청중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유권자들은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과 같이 카리스마적 리더십을 가진 후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이며 환호성을 질렀다.

3김이 현실 정치에서 모두 은퇴한 이후 선거 유세의 모습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상대적으로 존재감이 부족한 후보들은 유권자들을 불러모으는 것이 아니라 찾아다녀야 했다. 물론 현장에서 시민들이 원하는 정책과 정치의 방향을 듣는다는 취지는 좋다. 그러나 커다란 스크린과 빵빵한 음량을 자랑하는 스피커가 등장하면서 그 취지는 무색해졌다. 마이크를 든 후보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듣기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데 바쁘기 때문이다.

후보도 없이 선거송과 연설을 반복하는 빈 유세차가 나타나면 유권자들은 짜증과 분노를 드러낸다. “우리를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세뇌시켜 한 표를 찍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푸념이 나온다. 지난 17일 본격적인 선거 유세가 시작된 이후 19일까지 단 사흘만에 전국에서 경찰에 들어온 선거 유세 소음 신고가 698건에 달한다.

허술한 법도 유권자를 괴롭힌다.

현행 공직선거법 상 선거운동 기간에 휴대용 확성장치를 오전 6시부터 밤 11시까지, 녹음기 또는 녹화기는 오전 7시부터 오후 9시까지만 사용할 수 있지만 소음 데시벨(dB)을 제한하는 규정은 없다.

그러나 본질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우리 선거법은 사전 선거운동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SNS 등에서 자신을 알리는 행위도 자칫 선거법에 저촉되기 일쑤다. 현직 국회의원이나 지자체장인 후보는 그나마 평소 언론의 관심을 받고 의정활동 보고라도 할 수 있지만 현직에 있지 않거나 정치 신인일 경우 22일이라는 짧은 기간만 주어진다. 정치인과 유권자가 상시적으로 만나지 못하게 하는 선거법이 선거 기간 동안 과열된 선거 유세를 조장하는 셈이다. 장 자크 루소의 말처럼 유권자는 투표 때만 주인이 되고 투표가 끝나면 노예로 돌아가는 신세다.

오늘날 조기 대선을 부른 촛불혁명과 탄핵의 메시지는 “시민의 행복을 위하는 정치, 그 알맹이만 남고 위선과 욕망의 껍데기는 가라”는 것이었다. 이제 선거법도 유권자를 주인으로 만든다는 입법 취지만 남기고, 정치인과 유권자의 만남을 ‘부패의 싹’으로 치부하는 불안한 시선은 버릴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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