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교수…南 국회의원…‘인생 3막’ 여는 조명철

빌린 여권 우여곡절 거쳐 사선 넘어온 ‘평양 금수저’ 출신…통일미래포럼 준비, 북한인권·탈북자 지원활동 ‘또하나의 희망 ’ 앞에 서다

북한에서 대학교수를 지냈다. 남한에선 국회의원까지 해봤다. 1994년 중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조명철(58) 전 새누리당 의원 얘기다.

조 전 의원의 삶은 70여년을 훌쩍 넘어선 한반도 분단 역사상 가장 이채롭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양에서 장관 아버지와 대학교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북한판 ‘금수저’였다. 

탈북민 출신인 조명철 전 새누리당 의원은 17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를 향해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에 있어서 임기 내 가시적 성과에 조급해하지 말고 긴 호흡을 갖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박해묵 기자/[email protected]

김정일 국방위원장과는 중ㆍ고교, 대학 동문이자 후배기도 하다.

남한에 정착한 이후에도 정부출연연구기관 연구원, 고위공무원, 최초의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등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이력서를 써내려갔다.

하지만 그의 삶은 남들이 예상하는 만큼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았다. 사선을 넘나든 탈북 과정에 대해 얘기할 때는 눈시울이 불거지는가 하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남한에서 연구원과 공무원, 국회의원을 지내는 동안에도 남북한의 상이한 문화와 새로운 환경에서 오는 고충을 겪어야만 했다.

작년 19대 국회의원에서 물러나면서 대학 입학 이후 처음으로 쉬게 됐다는 조 전 의원의 얼굴에선 이제야 진짜 행복을 찾았다는 듯한 편안함마저 읽혔다.

그러나 그의 쉼은 길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가 국회의원 시절 공동대표를 맡았던 통일미래포럼은 조만간 재출범을 준비중이고 북한인권 및 탈북자들을 위한 활동도 이어가야 한다.

17일 서울 용산의 한 카페에서 만난 조 전 의원은 ‘인생 3막’을 열 준비에 한창이었다.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 대해 지금도 기억하나?

▶당연히 기억하지. 처음 얘기 꺼내는 건데…. 지금도 그렇겠지만 당시 북한에서 해외에 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여권을 대사관에서 회수해갔어. 북한 입장에서는 다른 곳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하나의 장치지. 특히 동유럽에서 유학생 대규모 탈북사태가 있던 직후라 더 엄격해졌어.

김일성종합대 경제학부 교수로 있다가 중국 난카이(南開)대학 교환교수로 연수 갔을 때인데 중국이 개혁ㆍ개방정책으로 잘 살게 된 걸 보고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지. 그런데 여권이 있어야지. 그래서 함께 대학에 연수 와있던 다른 나라 연구원분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여권을 빌렸지. 그분도 당황하고 두려워했는데 내 이야기를 듣고는 어렵사리 여권을 건네줬어. 지금 생각하면 그분이 내가 제2인생을 시작하는데 있어서 동력이고 은인이었어. 여권 한 장 있고 없고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고 참 어이없는 일이지.

-빌린 여권으로 통관이 쉽지 않았을 텐데

▶지금 생각해도 가장 공포스런 순간이었어. 중국에서 심천(深)을 거쳐 홍콩으로 가는 국제열차를 타는데 마지막까지도 가야하나 말아야하나 계속 고민이 되지. 심사대 앞에서도 발걸음이 가볍지 않은데 아무나 누구 한사람 가지말라고 하면 바로 포기할 것 같은 기분이었어. 누가 탁 건드리기만해도 쓰러질 것 같더라고. 그런데 혼자 줄 서서 떠밀리다시피 심사대 앞에 섰는데 막막하기만 하더라구. 내 가족, 형제, 친구, 동료, 스승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가야한다는 생각이 떠올라서….

심사대 앞에서도 중국 공안이 유독 나만 한창 들여다보는 것 같았어. 생과 사의 갈림길이라는 생각에 절벽 끝으로 내몰린 기분이었지. 어찌어찌 열차를 탄 뒤에도 홍콩으로 들어가기 직전 안내방송이 나오는데 또 그렇게 눈물이 나는 거야. 열차 안내원이 괜찮으냐고, 약을 가져다주겠다고 하는데도 아무 대답도 못하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기만 했어. 생과 사의 고비를 넘었다는 생각에 이제 모든 것을 버리고 가는구나라는 생각이 겹쳤기 때문인 것 같아.

-그래도 한국에 들어온 이후에는 순탄한 삶을 살아온 것 같다.

▶사실 작년 국회의원 끝날 때까지 대학 입학 이후 정말 단 하루도 쉬지 못해봤어. 한국에 오자마자 한달 정도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들어갔고, 좀 일하다 통일부 통일교육원장하다가 국회의원을 했는데 최근에야, 태어나고 처음으로 강의 좀 하면서 쉬고 있는데 너무 좋아. 하하하.

북한에서 김일성대 교수했다고 여기서도 학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사실 나는 기업인이 되고 싶었어. 여기 와서도 연구원 들어가 이런저런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용어도 틀리고 북한에서 배운게 적용되는 것도 없고 참 고생 많았지. 당장 내일 낮에는 회의를 해야하는데 밤새 읽고, 쓰고, 공부하고하면서 간신히 버텼던 것 같아.

-4년 간 의정생활은 어떻게 평가하나?

▶교수도 해보고 연구도 해보고 고위공무원도 해봤지만 국회 의정활동이 제일 힘들었어. 생소하기도 하고 내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지만 국회의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모든 걸 내려놓고 해야하는 직업이야.

국회가 일 안하고 특권만 누리면서 맨날 싸우기만 한다고 하는데, 뺀질뺀질 거리는 국회의원들도 일부 있지만 대부분은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를 제대로 해내기 위해 엄청 노력들을 많이 해. 나도 수십 번이나 힘들어서 사퇴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

내 평생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주기만 하는 일을 한 게 국회의원 때가 유일한 것 같아. 그런데 뒤돌아보니 나는 없는 거야. 결국 내가 감당할 능력이 있는가, 성격에 맞는가 생각이 들었지. 여야를 떠나서 다선의원하시는 분들 보면 정말 존경심이 생긴다니깐. 하하하.

-다시는 정치할 생각이 없나?

▶지난 총선 때 불출마선언하면서 당시 김무성 당 대표에게 가서 내 능력과 경험에 비하면 너무 벅찬 것 같다고 말했어. 한참 말리셨는데 내 뜻이 완고하니 결국 이해해줬지.

또 내가 능력도 부족하지만 다른 탈북민들에게 기회를 줬으면 해. 내가 국회의원 하면서 좋았던게 다른 탈북민들에게 나도 할 수 있구나라는 희망을 줄 수 있었다는 거야. ‘조명철처럼 할 수 있다’는 힘을 준 거지. 내가 또 한다고하면 다른 분들에게 기회를 뺏을 것 같고. 앞으로는 연구하면서 학생들 가르치고 늦었지만 원래 하고 싶었던 기업인을 한번 해봐야지. 하하하.

-탈북민 문제를 위한 해법은 어떤 게 있을까?

▶한반도의 미래, 한반도의 희망이 대한민국에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탈북민들에 대한 배려가 더 있어야 돼. 목숨 걸고 북한을 탈출해 한국에 온 사람들이 낙오되고 힘들어 자살하고, 다시 북한으로 가면 좋아할 사람은 김정은밖에 없어. 결국 김정은 정권 정당성만 키워주는 거야.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정치범수용소를 운용하는 나라, 핵ㆍ미사일로 국제사회에서 지탄받는 나라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일을 우리가 하면 되겠어.

탈북민들이 실망하지 않도록 배려가 있어야 해. 정부는 정책과 예산 통해 지원하고, 기업은 취업에 신경써주고, 시민사회는 사랑과 배려하고 다 같이 신경써줬으면 하지.

신대원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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