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日 콧대 꺾겠다…거울보며 피나는 스윙연습”

-한국오픈 7승의 전설 한장상 골퍼
16세때 캐디 된후 골퍼 입문
거울보며 피터 톰슨 스윙 연습
1964년 한국인으로는 첫 우승
요즘 후배 환경좋지만 노력 부족

제 60회 코오롱한국오픈이 1일부터 충남 천안 우정힐스컨트리클럽에서 개막한 가운데, 한국오픈의 전설 한장상(80)은 골프 한일전 첫승의 추억을 회고했다. 우리의 안방을 찾은 뒤 일본 내셔널타이틀 정벌까지 성공한 얘기였다.

1964년 개최된 제7회 한국오픈부터 4연패하고, 2년 뒤에 다시 3연패 해 이 대회에서만 총 7승을 쌓은 한장상 한국프로골프협회(KPGA) 고문,을 헤럴드경제 스포츠가 단독으로 만났다.

”어린 시절 군자리 서울CC 근처에서 살다가 16세 때 골프장을 스스로 찾아가 캐디가 됐다. 운동신경이 뛰어나 금방 눈에 띄었고, 회원번호 6번으로 프로 골퍼가 됐다. 교습서도 없고 제대로 스윙을 봐줄 스승 없이 독학하다시피 했다.“

1958년 제1회 미국인 무어의 우승에서 시작된 한국오픈은 6회까지는 미국, 대만, 일본 선수들의 독무대였다. 1962년 제5회 대회에서 일본 선수 나카무라 도라키치를 비롯한 4명과 대만의 사영욱이 톱5에 들었다. 나카무라는 우승 회견에서 “한국은 일본에 10년 이상 뒤져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한 고문은 “그 생각을 10년 안에 깨주겠다”고 맞받았다.

한장상 고문

1960년 8월에 열린 KPGA선수권에서 첫 우승을 하면서 아시아서킷으로 홍콩, 필리핀에 출전하게 되었는데 거기서 디오픈 5승을 한 호주의 피터 톰슨 스윙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이후 거울을 보면서 밤낮으로 따라했다.

“죽도록 연습했다. 어떤 때는 공이 안 맞아 울기도 했다. 남들은 왜 그렇게까지 연습하느냐고 했지만 나는 외국 선수처럼 잘치고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볼이 잘 맞더니만 언더파가 나오게 됐다. 반년 만이었다.”

한국오픈 제7회 대회는 1964년9월25일 서울CC(현재 어린이대공원 자리)에서 열렸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6오버파 294타로 우승했다. 2위였던 배용산, 조태운, 김학영이 207타였으니 무려 13타수차 우승이었다. 그로부터 4년 연속 우승했다. 1968, 69년 한국오픈은 대만의 진건충, 사영욱이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으나 제13회인 1970년부터 3년간은 다시 한장상의 무대였다. 1972년 2라운드에서 기록한 65타는 서울CC가 생겨난 이래 한 라운드 코스 레코드였다. 그는 대회를 우승하고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오픈에서도 우승했다. 우승 인터뷰에서 “10년전 했던 말을 지금 내가 극적으로 지켰다”고 했다.

한 고문은 KPGA선수권 1회부터 50회까지 출전하고 은퇴했다. 한번 우승하면 평생 출전권을 주는 선수권과는 달리 한국오픈은 자격이 제한되어 1회 대회부터 43회까지 출전했다. 그는 한국오픈 7승을 포함해 국내 대회에서 19승을 쌓았다. 해외 대회로는 1972년 일본오픈과 그해 일본 그랜드모나코오픈, 이듬해 구즈와국제오픈 등 3승을 했다. 

한국오픈 기념이벤트로 열린 양궁 골프 정확성 경연. 양궁이 이겼다.

59년 동안 이어온 한국오픈에서는 통산 7승과 3연패, 4연패 기록은 그가 혼자 가지고 있다. 통산 3승은 대만의 사영욱, 김대섭이 보유하고 있다. 대회 2연패 기록은 오빌 무디(미국), 진지명(대만), 스콧 호크(미국), 배상문, 이경훈이 세웠다.

그가 우승하던 서울CC는 ‘솥뚜껑그린이 많은 코스’다. 2003년부터 올해 대회까지 15년째 개최하는 우정힐스CC에 대해서는 “벙커가 깊고 난이도가 높아서 두자릿수 우승은 좀처럼 힘든 코스”라고 평가했다.

“요즘 선수들은 체격도 훌륭하고 장비와 연습 환경이 좋고, 비거리도 엄청나다. 초창기 한국오픈땐 갤러리도 거의 없었고 장비도 구식이었다. 하지만 선수들 연습량은 그때 만큼 못하는 것 같다.” 후배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남화영 기자/sports@herald.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