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연의 외교탐구] 사드의 양면게임…靑과 軍, 그리고 美의 체스판은 어디로

[헤럴드경제=문재연 기자] 주한미군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를 둘러싼 문재인 대통령의 양면게임(Two-level game)이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은 5일 사드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 절차검증을 지시했다. 

정부가 정책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대내외적으로 행위자 간 관계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바로 ’양면게임’이다. 민주국가에서 외교정책은 정부와 정부의 협상을 통해서만 이뤄지지 않는다. 국가와 국가, 기관과 기관, 그리고 여론과 상대국 여론 간 조율을 통해 이뤄지기도 한다. 

사드를 둘러싼 정부의 각종 움직임도 양면게임의 일환이라고 볼 수 있다. 불통으로 점철된 사드배치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 시작된 조사지만 한미 등 외교관계를 비롯해 청와대와 군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배치 과정에서 ‘불통행정’과 ‘불통외교’로 국내 여론과 중국의 반발에 직면했다. 이 때문에 사드배치에 대한 당위성은 배치결정에서부터 장비반입까지 계속 의심을 받았다.

사드를 둘러싼 문 대통령의 양면게임은 조금 다른 맥락이다. 문 대통령의 사드 관련 지시들로 전 정부가 자초했던 당위성 논란이 해결되고 있는 반면, 청와대와 밀월관계를 유지했던 군과 미국의 관계가 과제로 떠올랐다. 

[사진=연합뉴스]

▶文 대통령의 양면게임…“美를 달래라”=사드 보고누락 논란에서부터 환경영향평가 절차검증 지시는 대내적으로는 흐트러진 군 기강을 바로잡으려는 의도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사드를 둘러싼 주변국과의 외교 실타래를 풀어가는 기능을 하고 있다. 사드 절차검증으로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관계 재정립을 시도할 시간을 벌었다. 한국 서비스ㆍ유통업을 대상으로 대대적인 경제보복을 감행했던 중국은 문 대통령의 움직임에 주시하며 보복 수위를 낮추기 시작했다.

문제는 미국이다. 문 대통령이 ‘사드 보고누락 진상조사’ 카드를 빼들었을 때 미국은 미묘한 반응을 보였다. 여기에 사드부지 환경영향평가 재조사 지시로 사드의 연내가동이 사실상 불가능해져 한미 간 불협화음이 예상되고 있다. 

[사진=주한 미8군 사령부]

미국을 달래야 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한국은 안보차원에서 미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당장 북한의 핵ㆍ미사일 위협에 대처하기 위해 미군으로부터 패트리엇 미사일(PAC-2ㆍPAC-3)을 들여오고 있다. 당장 북한에 대한 억제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미 안보협의회의(SCM)에서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상시 순환배치를 촉구하는 게 한국의 현실이다. 우리 군이 미국으로부터 지원받는 전력인 정보, 감시정찰, 전자전 등 현대전의 핵심전력을 확보하는 데에도 적지 않은 예산과 시간이 필요하다.

현재까지 청와대는 미국과의 관계를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흔들림없는 한미동맹 토대위에 자주국방 전력을 확보하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청와대가 국가안보실장과 국방장관을 동원해 미국 달래기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지난주 방미해 미측에 사드 보고누락 논란이 국내적 조치일 뿐, 한미동맹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민구 국방장관도 지난 3일 매티스 장관에 사드 보고누락 논란이 사드배치 결정과는 무관한 문제라고 했다. 

[사진=연합뉴스]

아이러니하게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무례함이 한미 관계유지에 한몫하는 면도 있다. 미 의회전문지 더 힐은 4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비용을 한국에 전가하려는 발언을 해 동맹국과의 관계를 흔들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한국 등 아시아 동맹국들의 불안이 미국에 대한 불신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 당국자들이 동분서주하고 있다고 했다. 미 백악관 관료들과 국무부, 국방부 당국자들은 당장 트럼프 대통령의 무질서함으로 미국의 대외적 입지가 좁아질까 조바심이 난 상황이라는 것을 시사한다.

▶“靑ㆍ軍 밀월이 국가위상을 살린다”= 여기서 잠깐. 트럼프 대통령과 미 정부조직의 불협화음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장기적으로 이끌어온 정책이나 절차를 손바닥 뒤집듯 없애고 무시하면서 그 정부조직은 국제사회의 신뢰를 받지 못하게 된다. 미 국방부가 “사드비용은 주한미군이 낸다”고 재차 확인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확언하기 전까지 알 수 없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와 같은 미국의 사례는 문 대통령의 ‘사드 조사’가 외교적으로 안겨줄 또다른 양면게임이 무엇인지 시사한다. 바로 군. 청와대와 군의 밀월관계를 어떻게 확립하느냐다.

제 16회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보았듯이 국방부는 단순 국내조직이 아니다. 대외적으로 우리나라 안보정책을 협상해야 하는 조직이다. 강대국들 틈에서 위풍당당한 기세로 자국안보를 외치려면 대통령이 그만큼 체면을 살려줄 필요도 있다. 사드 환경영향평가 절차조사를 둘러싸고 청와대의 발빠른 진상조사와 책임규명, 그리고 대처가 필요한 이유다.

국방부의 사드 보고누락은 잘못된 것이다. 더구나 정권교체를 기점으로 국군통수권자에게 제대로 보고하지 않은 것은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방해한 ‘국기문란’ 행위다. 청와대는 이날 국방정책 업무를 맡고 있는 위승호(육사 38기ㆍ중장)국방정책실장이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에게는 사드 발사대 보관위치에 대해 보고한 반면, 새 정부에는 미국 측과의 비공개합의를 이유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군이 보고체계가 명확한 조직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한민구 국방장관도 책임을 져야 할 수 있는 문제다. 청와대는 일단 위 실장은 업무배제하는 선에서 사안을 마무리지었다.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이번 조사가 ‘망신주기식’으로 이뤄진 면이 있다는 것이다. 보고누락에 대한 정황파악조차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가 군에 ‘항명’ 낙인을 찍듯 기자회견에 나선 건 아쉬운 점으로 남는다. 특히 지난 28일 한 국방장관과 오찬에 나섰던 정 안보실장이 그 자리에서 한 장관을 질책하지 않은 것은 안보실장으로서 무책임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 서서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다. 한 장관이 ‘그런 게 있었습니까’며 이해할 수 없는 답변을 했다면, 안보실장은 국민의 안위와 번영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어떻게 그렇게 무성의한 답변을 할 수 있는가. 사드배치가 얼마나 큰 논란거리인데 무심한 모습을 보이냐’고 따졌어야 했다. 정 실장은 한 장관의 답변을 듣고는 답변의 의지가 없다고 생각해 입을 다물었다. 정 실장은 대신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한 장관의 발언을 문제삼았다.

우리는 정부조직이 신뢰를 받지 못하면 국제적으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직접 목격한 경험이 있다. 탄핵정국 당시 외교부는 렉스 틸러슨 국무부 장관과 만찬을 거부당하고도 만찬일정을 잡지 않았다는 비난을 받아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핵ㆍ미사일 도발이 있을 때마다 아베 신조(安倍 晋三) 일본총리가 통화하며 친분을 과시한 반면, 황교안 대통령권한대행 국무총리와는 거리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군이 신뢰를 잃는 순간, 국가안보가 설 자리는 사라진다. 사드배치의 절차적 투명성 확보도, 국방개혁도 군을 몰아낸다고 해서 이뤄질 수 없다. 결국 청와대와 군이 함께 업무해나가면서 이뤄야 할 과제다. 청와대는 이번 사건이 마무리되는대로 후임 장관을 조속히 임명하고 국방개혁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을 짜는 등 군 다독이기에 나서야 한다. 

청와대와 군의 밀월관계가 무너지는 순간, 자주국방의 길은 멀어지고 대한민국이 강대국의 틈에서 당당하게 설 자리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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