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류 리테일, 사모펀드의 덫에 걸리고 있다

<포커스>의류 리테일, 사모펀드의 덫에 걸리고 있다

인수 기업 담보로 대규모 대출로 자금 마련

과도한 이자 등 부담 줄파산 이어져

사모펀드 리테일 투자 현황

미국 대형 의류 유통업체들의 연이은 파산에 투기성 금융 자본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는 보고서가 나와 주목된다.

이는 금융서비스 업체인 파이낸스원이 최근 고객들에게 제공한 관련 시장 동향 자료에 따른 것이다. 이 업체는 매달 1~2차례씩 의류 산업을 중심으로 관련 시장 동향 자료를 고객들에게 무료로 서비스하고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최근 1년 사이 파산 또는 파산 보호 신청을 한 의류 유통 체인 절반 이상이 사모펀드(Private Equity)회사에 인수된 업체라고 지적했다.

특히 2007년 부동산 시장의 서브 프라임 사태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후 투기성 잉여 자금이 대거 의류를 중심으로 한 리테일 체인 업체에 몰린 것으로 알려진다.[표 참조]

지난 2004년 선 캐피탈을 비롯하 3곳의 사모펀드에 인수된 멀빈스(Mervyn’s)는 이들 투기 자본의 속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멀빈스를 인수한 이들 사모펀드는 이 업체가 보유중인 부동산 부문과 의류 체인 운영 부문을 인수 직후 분리했다.

부동산 부문이 떨어져 나갔지만 멀빈스에 돌아온 것은 단 1달러도 없었다. 대신 기존 보다 두배가 넘는 렌트비를 내도록 했고 사모펀드는 부동산 부문을 통해 정기적으로 배당금까지 챙긴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운영 자금이 바닥는 멀빈스는 4년후인 2008년 파산에 이르게 됐다.

지난달 파산보호를 신청한 ‘루21(Rue21)’ 역시 투기 자본의 희생양으로 분류된다. 이 업체는 2013년 아팩스 파트너스(Apax Partners)가 11억 달러에 인수했다. 인수 당시 아팩스 파트너스의 자본금은 2억8000만 달러에 불과했다. 결국 루21을 담보로 7억8000만 달러의 인수 자금을 빌렸고 4년 가량 상대적으로 높은 이자를 갚던 루21은 지난 5월 21일 채무에 대한 부담으로 파산에 이르게 됐다.

재정 상태가 좋았던 의류체인 클레어스(Claire’s)는 2007년 사모펀드인 ‘아폴로 글로벌(Apollo Global)’에 33억 달러에 인수됐다. 이 업체 역시 인수 자금의 대부분을 빌리다 보니 현재는 25억 달러가 넘는 부채로 인해 회사 운영이 매우 어려운 상태다. 영부인이었던 미셸 오바마도 사랑했던 미국의 대표적인 캐주얼 브랜드 J크루 역시 유사한 경우다. 레버리지 매수로 인해 생긴 10억 달러 이상의 막대한 부채로 인해 정작 디자인 개발이나 마케팅 등 회사 운영에 사용해야 할 돈이 금융 이자로 빠져나가고 있어 최근 들어 존폐를 걱정할 정도로 위험한 상황까지 이르게 됐다.

12일 파산 보호를 신청한 아동복 유통 업체 짐보리도 예외가 아니다. 지난 2010년 ‘베인 캐피탈(Bain Capital)’에 유사한 방식으로 인수된 바 있다.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한 공개 모집과 달리 사모펀드는 소수의 집단을 대상으로 자금을 모으는 특징이 있다.

여러가지 제한 사항이 있는 공모 방식과 달리 사모펀드는 고수익을 원하는 특정 소수인들 의도에 따라 회사가 운영돼 계열사 지원이나 내부 자금 이동 등의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높다.

사모펀드는 의류 체인을 인수할 때 보통 매입할 업체의 자산을 담보로 금융회사나 또다른 사모펀드에서 자금을 빌려 이를 인수 자금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이는 흔히 말하는 레버리지 인수(leveraged buyout)로 사모펀드 등의 투기자본이 활용하는 기법. 부실에 빠진 기업을 차입매수해 과감한 구조조정을 통해 기업가치를 정상화한 후 높은 가격에 처분하곤 한다. 이때 거액의 차입금 때문에 인수 후 자기자본비율이 크게 떨어져 신용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

적은 자기 자본으로 손쉽게 규모 있는 의류 체인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지만 정작 운영을 제대로 하지 못해 결국 최근 들어 파산 행렬에 동참하는 업체가 급증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순수하게 운영 미숙으로 어려움에 빠진 업체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인다.

파이낸스원의 박현민 부사장은 “상당수 사모펀드에 인수된 의류 체인들은 기업에 부담이 되더라도 투자 대비 수익률을 극대화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LA지역 한인 의류 도매업계 역시 거래선이 다변화됨에 따라 이들 사모펀드에 인수된 업체와의 거래도 크게 늘고 있다”며 “한인 업계 입장에서는 매출 확대를 위해 거래선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지만 신규 또는 기존 거래 업체의 경영 상태를 주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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