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스폰서 판사 파문… 비위 알고도 덮은 대법원

-경찰청장에게 뇌물 건넨 피고인, 부산고법 판사에 향응제공
-검찰 법원에 ‘비공식 문서’로 전달했으나 구두 경고만 이뤄져

[헤럴드경제=좌영길 기자] 대법원이 피고인으로부터 각종 향응을 제공받은 판사 비위 사실을 인지하고도 사실상 1년 넘게 묵인한 정황이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는 15일 “검찰로부터 ‘부산지검 수사 관련 사항’이라는 문건을 전달받은 바 있다”며 “이 내용에 기초해 해당 소속 법원장(부산고법)을 통해 문모 판사에게 품위유지의무 등 문제가 있음을 들어 엄중 경고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올해 초까지 부산고법 판사로 재직하던 문 전 판사는 2015년 5월 지역 건설업자 정모 씨로부터 수차례 골프와 룸살롱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정 씨는 조현오 전 경찰청장에게 뇌물을 건넨 혐의로 기소돼 재판 결과를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검찰은 법원에 비위 사실을 공식 통보하지 않고, 당시 김주현 대검 차장이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에게 사실을 전달하는 정도에 그쳤다. 두 기관 고위직 간부끼리 비난 여론이 생길 수 있는 사안에 관해 조용히 연락을 주고받은 셈이다. 대법원의 설명에 따르면 법원행정처는 윤리감사관실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징계에 회부할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조치라곤 박병대 법원행정처 처장이 직접 윤인태 부산고등법원장에게 경고 조치할 것을 요청한 정도다. 단순히 경고조치만 받은 문 전 판사는 지난 1월 정기인사에서 사직한 뒤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변호사로 활동 중이다.

검찰도 정 씨가 제공한 향응이 사건 처리와 대가성이 있는지를 문제삼지 않고 이 사안을 입건조차 하지 않았다. 대법원에 따르면 정 씨는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대법원 관계자는 “(검찰이 통보한 문건이)정식 공문은 아니었다”면서 “문 판사에 대한 입건 등 추가적인 사실관계가 드러나지 않았고 사직서가 수리됐다”고 해명했다.

문 전 판사는 1998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한 뒤 2년 여간의 일본 파견과 대법원 재판연구관 재직 시기를 제외하면 부산지역에서만 재직했다. 한 지역에 장기간 근무한 판사가 토착 건설업자로부터 향응을 제공받은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구두 경고에만 그쳤다는 점은 대법원이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을 지낸 나승철(40·사법연수원 35기) 변호사는“알려진 내용으로는 정 씨가 문 전 판사의 ‘스폰서’ 역할을 한 것인데, 비슷한 사안이 문제가 됐던 전례들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뇌물죄 여부를 검토하거나 징계회부를 검토할 수 있었지 않겠느냐”며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 혐의가 문제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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