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인문학 ‘쓸모있음’에 대하여

필자가 국문학도였던 80년대 말 90년대 초만 해도 국문과는 ‘굶는 과’로 불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 과를 스스로 선택한 학생들은 앞으로 ‘배가 고플 것’이라는 걸 어느 정도는 스스로 인정했다. 이건 국문과만의 일이 아니라 철학과, 사학과와 같은 ‘인문학’을 전공으로 삼는 학과들에는 대체로 그 사정이 비슷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이들 인문학을 전공한 이들이 사회에서 만나는 현실은 냉혹했다. 그런 과들을 바라보는 기업 면접관의 시선은 ‘참 쓸데없는’ 걸 공부했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좋은 대학을 나오면 과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던 시절이었으니 그래도 취직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처럼 대학도 많아지고, 대학생은 더 많아지고 그래서 취준생의 숫자는 더 많아 경쟁이 상상을 초월하는 현실 속에서 이러한 인문학을 공부한 학생들은 어떨까. 전공과목 이외에 다양한 현실적인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생활의 대부분을 보내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최근 이렇게 현실에서 소외돼온 인문학이 하나의 문화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그 사정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그간 재미와 오락, 게임으로만 점철되어 왔던 예능물에서조차 인문학을 소재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그 상징적인 사례는 아마도 나영석 사단이 만드는 tvN <알쓸신잡>일 게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 이 알쏭달쏭한 제목의 원제목이다. 요즘 가장 핫하다는 작가 유시민을 비롯해,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소설가 김영하, 과학박사 정재승이 어떤 지역을 여행하면서 그 지역이 환기시키는 지식들을 각자 전공분야에 걸맞게 수다로 풀어낸다. 인문학이라고 하면 어딘지 무겁고 어려워 접근하기 어려울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 프로그램은 놀랍게도 한번 들으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수다 속에 담겨진 지식의 향연에 흠뻑 빠져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만든다. 인문학이 우리 일상에 닿아 있고 사실은 굉장히 흥미롭다는 걸 보여주는 프로그램.

그런데 이 프로그램의 제목이 다시 눈에 띈다. 왜 하필 ‘알아두면 쓸데없는’이라는 수식어를 집어넣은 걸까. 그것은 다름 아닌 우리가 인문학이라고 하면 막연히 떠오르는 이미지가 바로 그 ‘알아두면 쓸데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인문학을 공부하던 우리들이 공부를 하면서도 마음 한 구석에 맴돌던 생각. 이런 건 알고 있어봐야 사회에 나가서는 별 쓸데도 없을 거라는 그 이미지를 이 프로그램은 영민하게도 제목에 집어넣었다.

하지만 이 ‘셀프 디스’의 성격을 가진 제목이 오히려 환기시키는 건, ‘도대체 그럼 쓸 데 있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다. 흔히들 알아두면 쓸데 있는 과로 경제, 경영, 법학, 의학 같은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그런 과에 들어가면 당연히 미래가 보장되는 것쯤으로 여겨져 심지어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선 자리도 줄을 선다고 한다. 하지만 이들 ‘쓸 데 있어 보이는’ 학문들이 우리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위기들을 모두 해결해줄 수 있을까.

‘쓸데 있는 것’만 추구하는 효용성 위주의 사회는 오히려 그 바깥에서 비롯되는 문제들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법을 공부한 수재들이 많다고 그 사회의 정의가 지켜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효용성 있는 것만 추구하며 그 과정으로서 법을 수단으로 삼은 이들은 자칫 법비가 되는 경우가 더 많다. 이런 사회라면 거꾸로 그 ‘쓸데없다’고 여겨져 온 것들이 오히려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다. 인문학처럼, 한 때 쓸데없다 치부됐던 것들의 ‘쓸모 있음’을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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