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와의 전쟁②] 한 집에 쓰레기만 35t…고령사회의 그늘 ‘저장 강박증’

-집안 물건 쌓아두고 못 버리는 강박 장애
-악취ㆍ화재 위험 등 주변 이웃에도 피해
-구청 차원에서 환경개선 서비스 나서지만
-주인 동의 없으면 손 쓸 방도 없어 골머리

[헤럴드경제=이원율 기자] 지난 4월 ‘악취가 난다’는 제보로 서초구 B동의 한 비닐하우스를 찾은 구청 직원들은 내부를 보곤 한숨을 내쉬었다. 그 안에는 페트병과 종이박스 등이 가득 차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온갖 벌레들이 득실댔다. 서초구청 직원과 자원봉사자, 환경미화원 등 30여명은 며칠간 씨름한 끝에 청소를 겨우 끝냈다. 쓰레기 5t 분량이 쏟아져 나왔다. 이 비닐하우스엔 80대 노인이 홀로 살고 있었다. 쓰레기는 노인이 몇 년간 동네를 돌며 모아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도심 곳곳에 악취가 진동하는 ‘쓰레기 집’이 늘고 있다. 쓰레기를 치우지 않고 그대로 쌓아두는 ‘저장 강박증’을 앓는 사람들 탓이다. 

아들이 다쳤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난달 당시 서울 노원구 A동의 주택 모습. [사진제공=서울 노원구]

가까운 일본 도쿄에선 초고령사회가 되면서 쓰레기집이 늘어났다는 통계가 있는데, 급속하게 늙어가고 있는 서울이 이를 답습 중이다. 최근에는 쓰레기 더미에 사망하는 사고까지 발생, 자치구들에 비상이 걸렸다.

지난달 초 발생한 노원구 쓰레기집 사망사고가 대표적이다. 저장강박증 증후군을 앓고 있는 70대 노모가 쌓아둔 쓰레기 더미를 치우던 40대 아들은 졸지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119 구조대원이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산더미 처럼 쌓인 쓰레기는 대문까지 가로막은 상태였다.

노원구는 사고 수습을 마친 뒤 유족과 상담을 거쳐 환경개선에 나섰다. 지난 12일 구청 직원, 부녀회, 자원봉사자 등 무려 60여명이 투입돼 쓰레기를 치웠다. 이 날 집안에서 나온 쓰레기는 자그마치 35t 분량이었다. 지난 14일에는 노원구 일촌나눔하우징이 도배와 장판도 무상으로 제공했다. 구는 70대 노모를 휴먼서비스(사례관리) 대상자로 지정해, 지속적으로 정신건강 상담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안석균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에 따르면 저장강박증은 사용 여부에 상관없이 어떤 물건이든 버리지 못하고 쌓아두는 강박장애의 일종이다. 이는 개인의 문제에서 그치지 않는다. 공중위생 저해와 악취, 화재 위험 등 이웃 사회에 피해를 줄 수 있다. 습관이나 절약으로 수집하는 형태와는 달라 증상이 심한 경우 행정당국이 나서서 쓰레기 처리를 돕고 치료도 주선해야 한다.

악취가 난다는 제보가 들어온 지난 4월 당시 서울 서초구 A동의 한 비닐하우스 모습. [사진제공=서울 서초구]

문제는 당사자가 협조가 필수라는 것. 자치구가 쓰레기 처리를 도우려해도, 당사자는 사생활 침해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설득과정이 지난하다. 허락까지 1개월에서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또한 악취 등 이웃 주민들의 민원이 쏟아져도, 아직 강제할 수단이 없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환경개선서비스를 거부하는 주민까지 감안하면 서울 시내 ‘쓰레기집’은 수백곳이 될 것”이라며 “자신을 정신병자로 본다는 오해에 치료 지원을 거부하는 일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올 초 주민 신고를 받고 구청 직원들이 달려간 용산구 C동의 한 주택 주인이 그런 경우다.

원래 집 구조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쓰레기가 가득했다. 개인 위생관리에도 문제가 드러났다. 그러나 거주하는 80대 홀몸 노인은 구청 개입을 거부, 용산구는 수차례 설득한 끝에 지난 4월에야 겨우 청소에 나설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스스로 문제라고 인식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게 먼저라고 입을 모은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강제적인 수단을 이행하면 당장은 해결될지 모르나 재발 가능성이 크다”며 “주민공간 확대, 동네 소모임 구성 등 사업을 활성화해 다른 주민과의 소통 기회를 늘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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