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층서 탈출한 英 화재 생존자 “시체 넘어 달렸다”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살아있다는 게 믿겨지지 않아요. 내가 겪은 일을 결코 잊지 못할 거예요.”

영국 런던 ‘그렌펠 타워’의 화마를 뚫고 생존한 크리스토스 페어베언 씨가 탈출 경위를 15일(현지시간) BBC방송을 통해 전했다.

페어베언 씨는 그렌펠 타워 15층 입주자로, 2년 전 이곳으로 이사왔다. 

[사진=BBC 캡처 화면]

그는 사고 당일 새벽 12시 45분쯤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거칠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 건물 내 경보가 울렸고, 문 틈으로 연기가 들어왔다. 순간 그는 화재가 발생했다는 것을 직감했다.

그는 즉시 소방서에 신고 전화를 걸었고, 수화기 너머로 “즉시 나가라”는 답을 들었다. 소방관은 “젖은 수건으로 얼굴을 감싼 뒤 빠져나오라”고 조언했다.

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연기가 자욱한 상황이었다. 3차례나 탈출을 시도했지만 연기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다.

당황한 그는 소리치기 시작했다. 창문을 두드리며 “도와달라”고 외쳤다. 창문을 열려고 했지만 플라스틱이 녹아 손을 데었다.

결국 그는 젖은 점퍼를 몸에 감고 문 밖으로 뛰쳐나왔다. 시커먼 연기가 덮치면서 숨 막히는 열기가 몰려왔다.

건물을 빠져나오며 그는 쓰러져 있는 시체들을 뛰어넘었다. 그 중 하나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도 했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죽은 사람의 얼굴을 봤다고 말했다. “아직도 (그 얼굴을)그릴 수 있을 정도로 기억이 생생하다”며 몸을 떨었다.

3~4층까지 내려왔을 때 그는 도저히 숨을 쉴 수 없었다. 시야가 흐릿해지며 쓰러졌다. 이때 소방관이 자신을 붙잡는 것을 느꼈다.

그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다. 폐에 가득찬 독성 연기를 빼냈다. 치료 내내 그는 울었다.

병원을 나섰지만 돌아갈 곳이 없었다. 모든 것을 화마가 삼킨 탓이다.  

지금은 런던시가 마련한 얼스코트 지역의 한 집에 머무르고 있다. 그는 “다시는 고층건물에 못살 것 같다”고 말했다.

“제가 살아있는 게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다치고 목숨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면 비통해요. 인생은 너무 짧아요. 앞으로는 친구들과 가족들을 더 자주 만나고, 제가 가진 것에 감사하며 살 거예요.”

[email protected]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