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은행 차기 행장 인선 작업 어디까지?

태평양은행

태평양은행의 차기 행장 인선 작업이 내부 임원의 승진이냐, 외부 인사 영입이냐의 갈림길에서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태평양은행 이사회는 올해 연말로 임기가 끝나는 조혜영 행장이 연임을 고사하고 일찌감치 은퇴의 뜻을 밝힌 데 따라 지난달 초 행장 선임을 위해 정광진 이사장, 이상영 이사 그리고 윤석원 이사 등 3인으로 구성된 인선 위원회(Nominating Committee·이하 인선위)를 구성했다. 태평양은행이 2003년 9월 설립 이후 이사회에 인선위를 만들기는 처음이다.

그것은 자산규모가 12억달러를 웃돌면서 상장 요건을 갖춘 만큼 차기 행장은 기업공개 절차와 준비를 주도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이 추가된다는 점에서 보다 신중하게 은행의 최고경영자(CEO)를 선임하겠다는 태평양은행 이사진의 의지를 반영한다.

유재환
유재환 뱅크오브 호프 고문
헨리 김
태평양은행 차기 행장 후보로 꼽히는 헨리 김 COO

하지만 인선위는 구성된 지 두달이 가까와지도록 뚜렷하게 활동하는 움직임이 없다. 인선위원 중 한사람인 윤석원 이사가 지병을 치료하느라 장기간 한국에 체류하고 있는 탓도 있지만 보다 큰 이유는 내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이견이 있기 때문으로 알려진다.

통상적으로 은행장을 찾기 위한 인선위는 일단 전문 헤드헌팅 업체를 고용해 여러 후보를 선별하고 이 후보들과 개별 면접을 통해 그들의 경영계획 등을 듣는 프레젠테이션을 거치면서 투명성과 전문성을 검증하게 마련이다. 태평양은행 인선위는 이런 객관적 후보 검증보다 내부 승진과 그간 한인은행장 경험이 풍부한 외부 인사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는 상황인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태평양은행의 한 고위인사는 “지난 9일까지 내부적으로 행장 후보에 대한 접수를 진행, 내부 임원과 외부 인사 등 2명을 행장 후보로 좁혀놓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내부 임원은 널리 알려져 있듯 헨리 김 최고대출책임자(CCO)겸 최고운영책임자(COO), 그리고 외부인사는 유재환 뱅크오브 호프 고문이다.

차기 행장 후보가 이렇듯 압축됐지만 결정이 미뤄지고 있는 것은 이사진 사이에 찬반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무엇보다 한미은행-중앙은행-윌셔은행 등 3대 상장은행장 직책을 두루 경험한 유재환 고문이 까마득한 후배인 헨리 김 COO와 경쟁하는 구도를 상당히 불편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유 고문을 잘 아는 한 금융계 인사는 “행장직을 여러 해 경험한 은행계의 원로급인 유 고문으로서는 이제 처음 행장직을 해보려는 헨리 김과 경쟁하면서까지 태평양은행장을 탐낸다는 현실을 몹시 꺼리고 있다”라며 “풍부한 은행장 경력에 대한 최소한 존중과 예우를 받고 싶어하는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유 고문으로서는 ‘경선’ 형태라면 행장 후보로 인선절차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이미 인선위 이사들에게 전달한 것으로도 알려지지만 확인되진 않고 있다. 유 고문은 아직 뱅크오프 호프와 계약기간이 한달여 남아 있어 그때까지는 공개적으로 거취를 말하기 어려운 입장이다.

은행 안팎에서는 현직 조혜영 행장의 임기가 올해 말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에 행장 추천과 이사회 결정, 감독국 승인 등의 절차를 감안하면 시간이 절대적으로 모자라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헨리 김 COO의 행장 승진을 지지하는 모 이사는 “현재 거론되는 내부 인사보다 태평양 은행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이 없다”라며 “지난 수년간 차근차근 준비해온 만큼 행장직을 이어받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태평양은행은 초대 장정찬 행장에 이어 2대 조혜영 행장까지 내부 임원이 행장직을 승계해온 전통을 세울 수 있다는 점도 헨리 김 COO의 승진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명분이다.

하지만 외부 인사 영입을 원하는 이사들은 “은행의 경쟁력을 더욱 키우고 기업공개 등을 통해 투자자에게 출구전략을 마련해 주려면 경험이 많은 분이 은행의 미래를 위해 더 좋은 후보라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최한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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