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인무효소송 매년 1000여건…허술한 제도 탓 ‘몰래 혼인신고’ 횡행

-신분증 훔쳐 ‘몰래신고’, 증인 보증도 형식적
-쌍방 출석 의무화하는 법안 19대 때 폐기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문재인 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에 내정됐던 안경환 서울대 명예교수는 1975년에 한 ‘몰래 혼인신고’가 결정타가 돼 낙마했다. 잇단 의혹과 추문에도 말을 아끼며 인사청문회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던 안 교수는 결국 혼인무효 전력이 드러난 지 하루 만에 사퇴를 택했다.

40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제도의 허술함 탓에 상대방 몰래 도장이나 신분증을 훔쳐 혼인신고를 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헤럴드경제DB]

송모 씨는 지난해 5월 가족관계등록 기재사항이 변경됐다는 구청의 연락을 받고나서야 자신의 혼인신고 사실을 알았다. 여자친구 박모 씨가 송 씨의 신분증과 도장을 훔쳐 몰래 혼인신고를 한 것이다. 인천가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끝에 송 씨는 혼인무효 판결을 받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현행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은 혼인신고를 할 때 쌍방 모두의 출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불출석한 사람의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신분증이나 인감증명서를 첨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한 쪽이 일방적으로 혼인신고를 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그러나 송 씨처럼 오랫동안 연인으로 지냈거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의 경우 상대방의 신분증이나 도장 등을 습득하는 것이 비교적 쉬워 일방적으로 혼인신고하는 일이 벌어진다.

현행법은 혼인신고를 할 때 2명의 증인이 보증을 서게 하는 보완장치도 두고 있다. 그러나 증인의 이름과 주민등록번호만 알면 굳이 증인의 동의를 받지 않더라도 그를 증인으로 기재하는 것이 가능한 데다 증인의 서명이나 날인의 진위에 대해 심사가 이뤄지지 않아 여전히 몰래 혼인신고는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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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모 씨는 2015년 2년간 교제한 여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했다가 봉변을 당했다. 이별을 받아들이지 못한 여자친구 서모 씨는 김 씨의 신분증과 도장을 빼내 구청에 혼인신고를 했다. 서 씨는 김 씨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어 그들의 주민번호와 주소를 물었고, 혼인신고서 증인란에 김 씨 친구 두 명의 인적사항을 그대로 적어냈다. 뒤늦게 이 사실은 안 김 씨는 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했고, 항소심까지 간 끝에 김 씨는 겨우 혼인무효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피해자들로선 소송 외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어 관련 법적 분쟁도 증가하고 있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지난 2015년 전국 1심 법원에 접수된 ‘혼인무효ㆍ취소소송’은 1028건으로 집계됐다.

최근 대법원이 낸 연구용역 보고서 ‘혼인신고제도의 개선에 관한 연구’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혼인신고 시 필수적으로 쌍방이 출석할 것을 제안하고 있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도 신의진 새누리당 의원은 혼인신고 시 당사자 쌍방이 직접 출석하도록 의무화하는 개정안이 발의된 바 있다. 그러나 국회 임기가 끝나면서 법안은 자동폐기됐다.

joz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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