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만에 판사대표회의…막 오른 사법개혁]재판 덜해야 능력인정 받는 아이러니…‘소수 정예집단’지적받는 법원행정처

일 열심히 하기로 소문난 A 판사는 임관한 지 15년 만에 법원행정처로 발령나 행정업무를 맡았다. 2년간 일한 뒤 일선 법원으로 복귀했지만, 법원행정처에서 일했던 경력 때문에 그곳에서도 다시 기획 업무를 맡았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2년간 일했고, 법원행정처에서 심의관과 국장을 맡았다. 한동안 제대로 된 재판업무를 맡지 못했지만, A 판사는 행정처 근무를 끝내고 일선으로 복귀한 이듬해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됐다.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곳이다. 사법정책을 수립하고, 일선 법원에 적용하는 과정에서의 제도 개선 방안을 연구한다. 인사와 예산에 관한 업무도 이 곳에서 맡는다. 사법부의 독립성을 존중해 만든 조직이다. 법원행정처장을 지낸 차한성(60·사법연수원 7기) 전 대법관은 재직시절 “일선 법원을 견인하는 게 아니라 지원하고 후원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행정처는 이미 오래 전부터 사법정책을 ‘하달’하는 기관으로 인식되고 있다. 사법행정의 시작과 끝을 담당하는 이곳에서 일하는 판사 수는 40여 명이다.

능력은 물론 근면성까지 갖춘 인력을 추려 법원 행정을 맡기고, 고된 업무에 대한 대가는 인사로 보상한다. 이러다 보니 판사가 재판을 덜 할수록 유능하다고 인정받는 아이러니가 생기고, ‘사법부 관료화’의 원흉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사법개혁이 논의될 때마다 조직 축소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법원행정처에서 업무를 통해 쌓은 국회 인맥은 훗날 대법관이나 헌법재판관이 될 기회가 왔을 때도 도움이 된다. 뒤집어 보면 법원행정처에 장기간 일한 인사가 고위직 법관이 되는 것은 3권 분립 측면에서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2014년 대법관 인사를 앞두고 야권에선 ‘이번 대법관 인선은 쉽게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하지만 막상 후보자가 지명된 후에는 열린 인사청문회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당시 후보자는 법원행정처 차장인 권순일(58·14기) 판사였다. 유능한 데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오가며 사법부와 입법부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인사가 나오니 국회에서도 제대로 흠을 잡지 못하는 셈이다.

권 대법관 외에 고영한(62·11기) 대법관과 김용덕(60·12기) 대법관, 최근 퇴임한 이상훈(61·10기) 전 대법관과 양승태(69·2기) 대법원장도 모두 법원행정처 차장을 지냈다. 국회를 상대하면서 쌓은 인맥은 퇴임 후 로펌으로 이동할 때 몸값을 올리는 데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대법관 중 한 명이 법원행정처장을 맡고, 현재 △기획조정실 △사법지원실 △사법정책실 △행정관리실 △사법등기국 △전산정보관리국 △재판사무국 등 4실 3국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실장은 보통 고등부장, 국장은 지법부장 급이 맡는다.

고양=좌영길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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