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도시바 베팅’ 통했다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승부수가 통했다. 불리한 상황에서 판세를 뒤집은 것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막바지에 ‘미일 연합’에 합류한 결정이었다. 출국금지가 해제된 지난 4월부터 일본과 미국을 오가며 펼치며 그가 보였던 인수 의욕이 결실을 맺는 형국이다. 업계에선 과거 정유화학과 이동통신 사업 인수로 이뤘던 SK그룹의 성장사에 또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일본 산업혁신기구와 미국 KKR·베인캐피탈과 함께 구성된 한미일 연합군의 일원으로 도시바 메모리 부문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이 유력한 상태다. 한미일 연합군이 써낸 금액은 2조엔, 한화로 환산하면 약 20조원 가량이다. SK하이닉스가 확보하게 되는 지분은 전체의 15% 가량으로 추산된다.


도시바 메모리 측은 주주총회가 이뤄지는 오는 28일 이전 본 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은 21일 이사회가 끝난 직후 발표된다.

도시바 반도체부문 매각은 불과 4개월사이 급속도로 진행됐다. 작년 12월 도시바가 미국 원전사업에서 1000억엔이 넘는 손실을 낸 것으로 확인되면서 재정부실이 심각해졌고, 올해 2월에는 처음으로 반도체부문 매각을 공식화하는 구조조정 방안이 발표됐다.

최 회장의 눈에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다.

최 회장은 2012년 일본 엘피다 인수에 강한 의지를 피력한 바 있다. 반도체 치킨 게임이 한창 진행중인 상황에서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 탈락해버린 엘피다를 인수해 D램 시장 1위를 노리겠다는 복안이었다. 그러나 최 회장의 엘피다 인수는 이사회에서 2시간 가량 격론 끝에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아직도 최 회장은 ‘그 때 엘피다를 인수했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표한다.


상황은 달라졌다. 이사회 설득도 이번엔 쉬웠다. 전세계 반도체 업계가 ‘슈퍼사이클’에 올랐다고 할 만큼 활황세를 보이면서 시장이 밝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HS는 올해 메모리 반도체시장이 전년 대비 30.3%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스마트폰과 PC등 IT 기기들이 대용량화하고 사물인터넷과 자율주행차 등 반도체 수요가 4차산업혁명과 함께 급팽창할 것이란 관측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일본 출국길에 오르면서 “단순히 기업을 돈 주고 산다는 개념을 넘어 조금 더 나은 개념에서 워치 해보겠다”고 말한 바 있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굴곡도 적지 않았다. 입찰 초기엔 검찰 수사가 가로막았다. 출국금지가 내려진 상태였다. 4월 출국금지 해제와 동시에 그는 전세계를 누비며 인수 의사를 타전했다. 인수합병 전문가로 꼽히는 SK그룹 참모진을 대동하고서다.


대만계 자본 홍하이 그룹 궈타이밍 회장이 30조원이라는 자금을 써낸 것으로 알려졌을 때는 SK측이 결국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왔다. 애플과 아마존 등 미국계 기업들이 향후 반도체 수급 안정을 위해 인수전에 뛰어들 것이란 관측도 복병으로 등장한 바 있다. 6월 들어선 브로드컴이 최종 우선협상대상자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도 있었다.

그러나 최 회장은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다. 미일 연합군에 동참키로 결정한 것은 최 회장의 ‘신의 한수’로 평가된다. ‘엘피다 인수 좌절’을 두번은 겪지 않겠다는 의지가 그의 결단에 힘을 보탰다.


최 회장이 도시바를 인수하게 될 경우 과거 정유화학과 이동통신사업 인수로 그룹의 1, 2차 도약을 이뤄냈던 SK그룹의 성장사에 ‘3차 도약’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SK하이닉스는 D램 분야에서, 도시바는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도시바 메모리 인수 효과가 반감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수하게 될 도시바 지분 15%로 할 수 있는 바가 예상외로 크지 않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와 전략적 파트너인 베인캐피탈의 지분을 합치더라도 경영권 지분을 한참 하회한다. 또 도시바의 3D 낸드 플래시 기술 수준이 불확실하다는 점도 이번 인수를 마냥 낙관하긴 힘들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email protected]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