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구도 교감 못하는 일자리연대기금

[헤럴드경제=정태일 기자]금속노조가 일자리연대기금을 만들자며 현대ㆍ기아차에 노사 각각 2500억원씩 출연하자는 기자회견을 한 지난 20일. 기자회견이 끝난 뒤 현대차지부 집행부 관계자들 전화통에 불이 났다. 금시초문의 내용을 접한 조합원들이 불같이 들고 일어서며 거세게 반발했다. 집행부 한 관계자는 “왜 자기들 돈의 용처를 마음대로 정하냐는 항의전화가 쇄도해 아직 확정된 것이 아니라 제안 정도만 한 것이라고 해명하느라 진땀을 뺐다”며 “공식발표 전 조합원들의 교감을 충분히 얻는 데 미흡했던 것은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금속노조의 거창한 제안이 심각하게 설익었다는 역풍을 맞는 것은 이처럼 한식구인 조합원들조차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조합원 한명 한명이 각출해야 기금이 마련되는데 돈 줄 사람도 용납 못하는 수준이라면 현대차 그룹사와 교섭에 나서기 전부터 노조 내부적으로 동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높다. 

금속노조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현대기아차에 일자리연대기금 조성을 제안하는 모습[사진제공=연합뉴스]

노조의 그럴싸한 제안을 두고 내부 균열이 인 것은 이번만은 아니다. 앞서 임금인상의 일정 부분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청년고용 등에 사용하자는 사회적연대기금 조성안이 나왔을 때도 금속노조를 향한 불만이 적지 않았다.

실제 울산의 조합원 내 각 동호회 및 향우회 단체 채팅방에서는 울분의 글들이 쏟아졌다. 한 조합원은 “그룹사 공동요구안으로 올라가는 걸로 아는데 금속노조는 현대차를 너무 쉽게 본다”며 “돈은 전부 현대차에서 가져가고 생색은 금속노조 본인들이 낸다”고 비판했다.

산별노조 효용에 대한 불신도 높았다. 또다른 조합원은 “우리가 산별노조에 가입해서 솔직히 얻은 것이 있나. 돈은 돈대로 주고, 오만 투쟁 현장에 다 끌려 다니는 판에 집행부는 도대체가 조합원들 여론을 듣고 있냐”며 성토했다.

심지어 개별 조합원도 아니고 이번 일자리연대기금 기자회견에 이름을 올렸던 한 지부는 이번 기자회견이 열리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경남의 한 현대차그룹사 지부는 “통상임금소송에서 승소해 미지급 수당 일부로 일자리기금을 만든다는 것 자체를 이번에 처음 들었다”며 “당장 조합원들 상대로 동의를 구할 수 있을지부터가 의문”이라고 밝혔다.

사회적으로는 이번 금속노조의 제안이 ‘연대의 탈’을 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노조가 현재 갖고 있는 것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결과가 불투명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승소를 가정 하에 ‘미실현 이익’으로 연대하겠다는 발상이 도마에 오른 것이다.

노동계에서는 2년전 금액은 적지만 진정한 연대를 보여준 SK하이닉스를 본받아야 한다는 여론도 형성되고 있다. 2015년 SK하이닉스 노사는 당시 임금 인상분의 20%(직원 10%, 회사 10%)인 약 60억원을 협력업체 직원의 급여를 올려 주는 데 쓰는 임금공유제에 합의했다. 노조와 회사가 공평하게 내놓는 이 사례야말로 진정한 연대라는 것이다.

겉으로는 재벌개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사회양극화 해소 등에 목소리를 높이면서 정작 대졸 초임 연봉 정도를 더 올려받겠다는 것이 노조의 실상이기도 하다. 현대차 노조는 회사에 순이익 30%를 성과급으로 지급하고, 기본급 15만4883원을 인상해달라고 요구했다. 성과급과 기본급 인상액을 다 더하면 1인당 3000만원 이상을 더 받겠다는 것이다.

이번 일자리연대기금에 대해 겉으로는 귀족노조 틀을 깨려는 시도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고액 연봉자들이 자기 것은 건드리지 않고 되레 연봉만 올리려 한다면 귀족노조의 이미지만 굳혀질 수 밖에 없다. ‘왜 또 독일인가, 노사관계의 대안을 말하다’의 하성식 저자는 “더 많이 가진 자가 더 많이 양보해야 한다는 독일 노동계 기본 정신을 우리도 되새길 필요가 있다”며 “이것이 연대의 기본”이라고 강조했다.

killpass@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