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가능한 만성질환인데…HIV 감염인 수술 거부 26.4%

- 일반적 소독으로 예방 가능한데도 차별
- 생사 오가는 응급실에서조차 거부 일쑤
- 적절한 치료 받지 못해 건강 상태 불량

[헤럴드경제=원호연 기자]인간면역바이러스(HIV) 감염인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여전한 가운데 이들을 적절히 치료하고 인권을 지켜야 할 의료기관과 의료인들조차 이들을 차별해 진료나 수술을 거부하거나 공식적인 협진 관계에 있지 않은 의료인에게 감염사실을 누설하는 등 인권 침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21일 국가인권위원회 ‘감염인 의료 차별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 HIV 감염인 중 생존자는 1만 502명으로 집계됐다. 우리나라 HIV 유병률은 다른 국가들에 비해서 낮지만 의료기관에서 진단받은 사례들만 집계한 결과이므로, 실제는 이보다 3배 이상 많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새로운 치료제 개발로 HIV는 당뇨병과 마찬가지로 관리 가능한 질병이 됐지만 이들의 건강을 책임질 의료기관조차 잘못된 인식과 낮은 인권의식으로 이들의 치료나 수술을 거부하거나 감염 사실을 제 3자에게 누설하는 등 인권침해가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2015년 서울시립보라매병원에서 HIV감염인에게 스케일링 치료를 위해 별도의 공간에 마련한 의자를 비닐로 덮은 모습. [사진제공=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

유행 초기인 1980년대 에이즈 감염은 곧 죽음으로 이어졌지만 다양한 치료제의 칵테일 요법 개발로 하루 한알 복용으로 에이즈 발병률 낮아졌다. 2006년부터 하루한알로 지속적인 복용이 가능한 치료제가 등장하면서 HIV 감염인 중 AIDS 환자로 악화되는 비율이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아졌다. 사실상 당뇨병처럼 관리가 가능한 만성질환이 된 셈이다.

그러나 의료기관에서조차 HIV 감염인에 대한 인식 부족으로 각종 인권 침해가 횡행하고 있다. 보고서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HIV 감염인 중 스케일링 등 기본적인 치과치료를 받는 데 감염예방을 이유로 별도의 기구나 공간을 사용한 경우가 40.5%나 됐다. 실제로 지난 2015년 서울시립보라매병원은 감염인이 스케일링을 받고자 하자 진료용 의자는 물론 칸막이와 주변 물건까지 모두 비닐로 둘둘 덮어 서울시 시민 인권보호관이 조사, 인권침해 예방 가이드라인 마련하기도 했다.

나아가 감염인 중 26.4%는 병원 등 의료기관에서 약속된 수술을 거부당하는 등 인권 침해를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병원은 고관절 수술을 받아야 하는 감염인에 대해 “특수 장갑이 없어 수술이 어렵다”며 수술을 거부하기도 했다.

문제는 자칫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는 응급실에서조차 이들에 대한 치료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이다. 교통사고를 당한 한 감염인은 “응급실 담당 의사가 오더니 이렇다 저렇다 얘기도 없아 ‘안 된다’ 한마디만 하고 가 버렸다”며 “내가 감염인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했다.

의료기관에서 치료나 수술을 거부하는 가장 큰 사유는 소독 및 감염관리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러나 HIV는 몸 밖으로 나와 공기 중에 노출될 경우 24시간 내에 90~99% 감소하고 염소가 녹아있는 수돗물에서는 단시간 내에 활성을 잃어 일반적으로 의료기관에서 감염예방을 행하는 소독 수준으로도 전염을 막을 수 있다. 특히 공기를 통해 전염되지 않는다.

더큰 문제는 특정 환자가 감염인이라는 사실이 진료를 맡지 않은 의사나 원무과 직원들에게도 알려진다는 점이다. 이들 중 5명 1명은 감염 사실이 누설되는 경험을 했다. 특히 절반 이상의 응답자가 10년 전보다 차별이 의료기관으로부터의 차별이 별 변화가 없거나 심해지고 있다고 느꼈다.

이처럼 의료 서비스로부터 차별을 받은 결과 이들의 건강관리상태는 일반 국민에 비해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2년간 건강검진 또는 암 검진 수검률이 절반에 불과한 한편, 치과에서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비율도 일반인에 비해 1.5배에 달했다.

유엔이 2030년 에이즈 유행 종식을 목표로 채택한 ‘2016년 정치적 선언문’은 ”예방과 치료, 돌봄 지원에 있어 낙인과 차별에 대응하는 것이 국제적 HIV 유행에 대항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라고 선언한 바 있다.

국가인권위는 22일 오후 인권교육센터 별관에서 이같은 의료 차별 현황과 정책적 방안 모색을 위한 토론회를 열 예정이다.

why3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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