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속으로] 인사청문회의 ABC

곧 즐거운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기말고사를 마친 대학교수들은 학생들의 평가에 들어갔다. 노련한 교수들은 중간고사와 기말고사, 출석, 수업참여도 등 이미 정해진 기준에 따라서 어렵잖게 A,B,C,D학점을 메긴다. 도저히 아니다 싶으면 F학점을 주기도 한다. 학생 개개인의 미래를 좌우할 학점은 객관적인 근거에 의해 매겨지기 때문에, 뒷말이 거의 없다. 만약 학점이 제대로 매겨지지 못할 경우, 교수도 학생도 ‘괴로운 여름방학’을 보낼 수 있다.

비단 대학이 이럴진대 정부는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국회 인사청문회를 순조롭게 넘겨야 향후 국정운영의 탄탄대로를 달릴 수 있다. 이날 현재 17개 장관 가운데 6개 장관직 청문회를 마쳤으니 아직 갈 길이 멀고 험하다. 문 대통령이 야심만만하게 발탁한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를 향해 친박계 3인방으로 불리는 자유한국당의 서청원, 최경환, 윤상현 의원 3명이 돌아가며 마이크를 잡고 포문을 여는 국회 청문회 모습을 보면서 문재인-박근혜의 대리전 또는 보복전을 보는 느낌마저 들 정도였다. 이러한 여야 공방전속에 안경환 법무부 장관후보자는 낙마했고, 앞으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총리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자 등이 ‘공포속에서’ 줄줄이 인사청문회를 기다리고 있다. 차제에 인사 청문회의 검증 기준을 설정해놓지 않으면 여야 격돌의 악순환은 계속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야당은 무조건 공격하고 여당은 모조건 방어하며, 누구는 운 좋게 통과되고 누구는 운 나쁘게 낙마하는 인사청문회의 무원칙과 후진성은 더욱 악화될 것이다.

요즘 인사 청문회를 보노라면, 도대체 ‘구체적인 기준’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것이 두루뭉술하고 고무줄 잣대 같다. 국회 청문회도 대학의 ABCDF학점제처럼 5개 정도의 등급을 메기면 어떨까? 문재인 대통령이 ‘5대 비리’로 제시했던 위장전입과 부동산 투기, 병역문제, 세금탈루, 논문표절을 포함해서 10여개 정도의 항목을 설정하고, 여야 청문위원들이 항목별로 평점을 매기는 방식이다. 그래서 평균 평점을 내어 합격과 불합격을 정하는 것이다. 그 기준을 B등급으로 할지, C등급으로 할지는 여야가 정하면 된다. 물론 여당은 모두 A등급을 주고, 야당은 모조리 D등급이나 F등급을 주어서 평가의 객관성을 상실할 수도 있다. 다만, 여야는 국민의 ‘무서운 감시’를 감수해야 할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의 ABCDE 등급제는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 객관적인 기준을 제시한다는 점에서 꼭 필요하다고 본다. ABCDF 등급이 어렵다면, 매 항목별로 10점 만점을 정해 점수를 매기는 지수화(指數化) 방법도 있다. 분명한 것은 지금처럼 아무런 평가기준이 없을 경우, 야당이 작심하고 공격하면 방법이 없고, 대통령이 작심하고 임명하며 야당 역시 아무런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다.

청와대도 내부 체크리스트의 ABCDF 등급제 도입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9개 항목에 걸쳐 200개 달하는 방대한 질문지를 통해 자체 검증을 벌인다. “당신의 자녀가 호텔에서 결혼한 적이 있는가?” “당신은 성희롱으로 고소고발을 당한 적이 있는가?” 별별 질문들이 다 있지만, 이 체크리스트의 커트라인은 어느정도인지 구체적인 평가기준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기회에 청와대 자체 검증시스템과 국회 청문회 제도를 개선한다면, 그것은 획기적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검증의 등급화는 당장 불편하더라도 중장기적으로는 매우 용이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야당이 무작정 ‘송곳 검증’만을 주장한다면, 그것은 영원히 야당만 하겠다는 선언에 다름 아니다. 문 대통령은 80% 안팎의 높은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계속 겸허한 자세를 보여주기 바라며, 야당은 10% 안팎의 낮은 지지도가 무엇을 의미하는 직시하기 바란다. 그 접점 속에서 새로운 A급 인사청문회 제도의 개선책이 마련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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