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범 체포 논란] 제대로 조사없이 체포…과잉진압 논란 불러

-범죄 명백한지, 도주 우려 있는지 요건 갖춰야
-위법한 체포 저항해 경찰 폭행…法 “정당방위”

[헤럴드경제=김현일 기자] 2015년 6월 정모 씨는 술에 취한 채 골목길을 걷다가 지나가는 차량의 사이드 미러에 팔을 부딪혔다. 이윽고 차에서 내린 김모 씨 일행과 말다툼이 벌어졌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김 씨 일행으로부터 정 씨의 폭행 사실을 전해 들었다. 정 씨가 소리를 지르며 난동을 부리고 신분증 제시도 거부하자 현행범으로 체포하려 했다. 정 씨는 거세게 저항하며 경찰의 낭심을 움켜잡았다. 경찰은 출동 경찰관 폭행 혐의 등으로 정 씨를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결국 정 씨는 폭행과 상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울산지법은 지난해 5월 경찰의 현행범 체포가 위법했다며 정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3심까지 간 끝에 대법원은 정 씨의 무죄를 확정했다.


최근 경찰이 현행범 체포 과정에서 일반 시민을 범인으로 오인해 엉뚱한 사람을 체포하거나 급박한 상황이 아닌데도 테이저건이나 수갑을 사용해 과잉진압 논란이 불거졌다. 문재인 정부가 검찰과 경찰의 수사권 조정을 전제로 경찰에 ‘인권 친화적인 경찰’을 주문한 상황이라 이 같은 경찰의 체포 관행에 관심은 더욱 집중되고 있다.

대법원은 수사기관의 현행범 체포가 합당한 지 판단할 때 범죄의 명백성과 도망갈 우려, 가벌성 등을 그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현행범 체포가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인 만큼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는 것 외에도 그 요건을 까다롭게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현행범 체포는 위법한 체포에 해당한다고 판례는 명시하고 있다.

앞선 사례에서 경찰은 ‘정 씨가 김 씨를 때렸다’는 김 씨 일행의 말만 들었을 뿐 주변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하거나 목격자의 진술은 들어보지 않았다. 법원은 경찰이 ‘범죄의 명백성’에 대한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찰이 출동했을 당시에도 정 씨는 말다툼만 하고 있었을 뿐 김 씨를 폭행하는 상황은 아니었다. 법원은 이 점을 들어 정 씨를 ‘범죄를 실행 중인 자’ 즉 현행범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밖에도 정 씨가 도망갈 우려가 없었고, 형법상 폭행죄가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경미한 범죄란 점에서 당시 현행범 체포의 필요성을 낮게 봤다.

남은 것은 정 씨가 경찰의 낭심을 잡아 상해를 가한 부분이었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불법 체포를 면하려고 반항하는 과정에서 경찰관에게 폭행을 가한 것은 정당방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된다.

재판부는 이를 근거로 정 씨가 경찰에게 상해를 입힌 것은 경찰의 불법 공무집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했기 때문에 정당방위로 판단하고 죄가 없다고 봤다.

한편 지난해 대검찰청이 발표한 ‘범죄분석’을 보면 2015년 한해 6854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다. 범죄유형별로 따지면 절도 사건에서 가장 많은 893명에 대해 현행범 체포가 이뤄졌다. 그 뒤를 이어 사기 809명, 상해 589명, 성폭력 387명 순이었다.

특히 살인 사건의 경우 296명이 현행범으로 체포됐는데 이는 영장없이 긴급체포(274명)되거나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83명)된 숫자보다도 많았다. 대부분 범행을 저지른 후 현장에서 벗어나지 않아 출동한 경찰에 체포된 경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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