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읽어주는기자] 차기 축구대표팀 감독의 요건=최강희

-1997년 ‘붉은악마’ 김수한 기자의 축구 이야기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최강희 전북현대 감독은 지난 2014년 브라질월드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을 본선에 진출시킨 감독이다. 지금과 비슷하게 월드컵 예선에서 불안에 떨던 한국 대표팀을 맡아 결국 본선에 진출시키는 쾌거를 이뤘다. 그런 그는 울리 슈틸리케 감독 경질 후 여전히 한국호 차기 사령탑 1순위 후보다.

5년여전 상황도 지금과 비슷했다. 당시 대표팀의 조광래 감독이 성적 부진으로 경질되면서 국내파 중 최강희 감독이 대안으로 낙점됐다.

지금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 한국 축구계는 최강희 감독에게 제발 대표팀 감독을 맡아달라고 애원했고, 최 감독이 고사했다는 점이다. 당시 전북현대를 국내 최정상급 팀으로 성장시킨 최 감독은 자신이 유력 후보라는 언론 보도에 “그럴 일 없다”고 일축했다. 하지만 불과 2주 후 축구계의 요청으로 어쩔 수 없이 대표팀 감독직을 떠안았다.

[사진=전북현대 홈페이지]

전북현대 감독으로서 국내 프로축구 K리그를 평정한 최 감독은 국내파 감독 중 축구 명장의 반열에 오른 상태였다. 최 감독에게 대표팀 임시감독 자리는 잘해야 본전인 가혹한 시험대였다. 2011년 K리그 우승을 이루고 다음 시즌을 준비하던 그에게 대표팀 임시감독직 제안은 날벼락과 같았을 것이다.

월드컵 8연속 본선 진출이라는 과업을 이룬다 해도 그가 얻을 건 별로 없었다. 실패하면 축구 역사에 길이 남을 대역죄인이 되고, 성공하면 당연히 할 일을 한 ‘원오브뎀(one of them)’이 될 운명이었다.

난국에 빠진 축구계는 긴급처방전에 최강희 감독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축구계의 고압적인 행정은 뒷맛을 씁쓸히 남겼다. ‘8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과업을 최 감독에게 굳이 맡긴 축구협회는 히딩크, 쿠엘류, 본프레레 등 세계적 명장을 모셔올 때와 달리 그의 개인 사정이나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았다.

월드컵 8연속 본선 진출 대기록 달성이라는 과업은 역대 어느 감독도 이루지 못한 대기록이다. 이런 대기록을 이루겠다며 축구협회가 최 감독을 선임함으로써 최 감독은 개인적으로 많은 걸 잃어야 했다. 실제로 2012년, 2013년 시즌 전북현대는 리그에서 부진했고, 결국 우승을 이루지 못했다.

게다가 축구협회는 ‘최강희 감독을 선임했지만 계약기간은 정하지 않았다’며 고압적 태도로 일관했다. 이런 축구 당국의 행태는 최 감독을 선임했지만, 언제든 잘못할 기미가 보이면 경질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축구계의 귀중한 자산인 최 감독을 너무 쉽게 사지로 몰아넣은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됐다.

실제로 최 감독은 대표팀 임시감독으로서 월드컵 본선이라는 과업을 이뤄냈지만, 곧 대중들에게 잊혀졌다. 월드컵 본선이라는 과실은 후배인 홍명보 감독에게 넘겨졌다.

최 감독은 본선 진출 확정 후 언론 인터뷰에서 앞으로 이런 불행한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며 축구계의 ‘막장’ 행정을 질타하기도 했다.

최 감독은 지금도 여전히 울리 슈틸리케 감독 경질 후 축구계가 고려할 만한 차기 사령탑 1순위로 꼽힌다.

전북현대 감독으로 부임한 첫 해(2005년) FA컴에 우승했고, 2006년 국내 프로팀 중 첫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우승이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다. 2009, 2011년 K리그 우승으로 국내파 명장으로 자리매김했고, 이를 기반으로 2012년 한국팀 월드컵 본선 진출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그거 떠난 여파로 2012년, 2013년 부진했던 전북현대는 그의 복귀와 함께 전열을 재정비해 2014, 2015년 2연속 K리그 우승을 일궈냈다.

이용수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지난 15일 슈틸리케 감독과 동반 사퇴를 발표하면서 차기 사령탑의 요건으로 “국내 감독이면서 월드컵 최종예선을 경험한 감독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 감독으로서 월드컵 최종예선을 경험한 감독 중 아직도 현업에 머물며 현장감을 잃지 않은 사람은 최강희 감독 한 명이다.

그러나 축구계에서는 허정무 전 대표팀 감독, 정해성 대표팀 코치, 최용수 전 FC서울 감독, 신태용 전 U-20 대표팀 감독 등이 거론될 뿐 최 감독은 거론되지 않고 있다.

물론 최 감독 소속팀인 전북현대가 지난해 심판 매수 의혹에 휩싸였고, 이와 관련된 전직 직원이 이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는 등 전북현대가 내홍에 시달리고 있는 점이 걸림돌이긴 하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 똑같은 위기를 겪어봤고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지도자가 있다는 점은 한국 축구에 큰 자산이다. 그러나 그의 이름이 전혀 거론되지 않고 있는 점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축구계의 해묵은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제기된다.

앞서 안민석 의원(더불어민주당, 경기 오산)은 지난 8일 한 언론 인터뷰에서 “대한축구협회는 현대축구협회다. 현대가의 조직”이라며 “한국 축구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라고 말해 지적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안 의원은 인터뷰에서 “축구협회는 12년 전과 지금이 달라진 게 없다”며 “옷만 정몽준에서 정몽규로 바꿔 입은 것뿐이다. 현대가들끼리 나눠먹고 있다 비판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축구협회 회장이라는 사람이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한 철학이 없다”며 “축구 발전보다는 다른 데 사심이 있다”며 “그러니 회장은 축구인들에게 존경과 신뢰를 받지 못한다. 축구 발전이 이뤄지지 않는 이유”라고 말했다.

그는 정몽준 회장이 1993년 집권한 뒤 24년 동안 이어진 현대가의 축구계 장기 집권을 끝낼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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