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기 아까운 정책들] 보석을 내다버리는 줄도 모르고…5년마다 대청소 ‘법석’

노무현정권이 만든 ‘비전2030 보고서’
최근 다시 꺼내든 공무원들 탄식·놀라움
전문가·각계 의견수렴 최초의 장기전략
문제점 진단 해결방안…현재에도 유효

정권마다 던지는 새 화두 국민체감 못해
정치적 입장차이일뿐 문제점 인식은 동일
지속 필요성 있는 사업 가려 업그레이드를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정부세종청사 공무원들 사이에 ‘함께 가는 희망 한국, 비전 2030’ 보고서에 대한 ‘열공’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됐다. 이 보고서는 ‘한 세대 앞을 내다보고 수립된 최초의 국가 장기종합전략’으로, 노무현 정부 후반기인 2006년 8월말 발표됐으나 그로부터 1년 6개월 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사실상 폐기됐던 보고서였다.

책장의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던 이 보고서를 다시 꺼내든 일부 공무원들은 탄식과 함께 놀라움을 금치못했다. 이들이 고민하는 우리 경제ㆍ사회의 문제점에 대한 진단과 해결방안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있음에도 10여년 동안 잊혀진 때문이었다.

이 보고서는 당시 전문가 60여명과 정부가 각계 의견 수렴 등 1년 이상의 작업 끝에 내놓은 ‘역작’이었다. 5년 단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넘어 20~30년 앞을 내다보는 최초의 장기 종합전략으로, 현세대의 노후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계획을 담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 우리는 저출산ㆍ고령화, 저성장, 양극화 등 장기ㆍ구조적 도전요인에 직면해 기로에 놓여 있다”며 “더 늦기 전에 한 세대 앞을 내다보는 장기ㆍ종합적 대책 수립과 체계적인 대응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정부 역할은 물론 성장ㆍ복지ㆍ투자 등 각 분야의 패러다임 변화를 제시하는 한편, 연령ㆍ계층별 상세한 맞춤형 정책과 중장기 재정운용 방안까지 담았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는 진보정권의 그림자를 지운다며 이 보고서는 물론 관련 정책을 폐기하고, 새 정책방향을 제시했다. 이처럼 5년 단위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의 정책을 폐기하고 재설계하면서 국가에너지 낭비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김대중(DJ) 정부는 벤처육성을 최대 정책과제로 제시하고, 대대적인 벤처육성 정책을 펼쳤다. 닷컴(.com)과 벤처산업은 나락으로 떨어진 우리경제에 역동성을 불어넣으며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에서 벗어나게 했다. 하지만 이어 집권한 노무현 정부는 벤처산업이 거품(버블)을 끼게 했다며 이를 폐기했다. 그러면서 지역균형발전과 금융허브 정책을 새 화두로 제시했다.

이명박(MB) 정부 역시 이전 10년 동안의 진보정권 유산을 청산한다며 대대적인 규제완화와 함께 녹색성장을 화두로 제시했다. 미래 성장산업으로 부상하던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과 환경산업의 육성을 추진하는 한편,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4대강 사업을 강행하면서 이를 녹색성장으로 포장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어 집권한 박근혜 정부는 MB정부와의 차별화를 강조하며 창조경제를 새로운 화두로 제시했다. 초기엔 창조경제에 대한 개념의 혼란이 빚어지기도 했지만, 정보통신기술(ICT)과 전통산업의 융합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의 창출로 방향이 잡히면서 전국에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구축했지만 미완에 그치고 말 운명이다.

이번에 등장한 문재인 정부는 만연한 부정부패와 격심한 양극화 등 이명박ㆍ박근혜 9년 집권의 적폐 청산과 함께, 일자리 창출을 최대 화두로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더불어성장, 경제민주주의, 지속가능한 발전 등을 목표로 제시하고 정책을 구체화하고 있다.


그동안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매번 새로운 화두가 등장했지만, 실제 국민들의 체감도는 그리 크지 않다. 정치적 입장 차이로 구체적인 정책에서는 다소 차이가 날수 있지만, 우리 경제ㆍ사회 대한 진단이나 문제점 인식에선 큰 차이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새정부가 이전과 차별화된 정책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정책이나 사업 가운데 지속 필요성이 있는 사업까지 폐기할 것이 아니라 추진 과정의 문제점을 보완해 ‘업그레이드’ 또는 ‘재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중장기적인 국가 발전 및 개혁 아젠다(의제)를 설정하고, 이를 지속적으로 보완해 추진할 시스템을 만들어 제도적으로 보장할 필요도 많다는 지적이다.

이해준 기자/[email protected]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