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물 캐릭터 넘치는 ‘품위녀’…진짜 ‘품위’ 찾을까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에 나오는 인물들은 품위라고는 찾아보기 힘들다. 여기 나오는 인물들은 드라마에서 흔히 다루던 재벌들이 아닌 서민과의 접촉이 비교적 용이한 준재벌 부유층이다.

극중 대다수 여성들은 상류층인 척, 고상하고 우아한 척 하지만 알고 보면 과거 약점들이 한가지씩은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그 비밀과 상처를 감추기 위해 상류층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김희선 남편과 바람이 난 이태임은 김희선을 만나자 “우리 페어플레이 해요. 사모님”이라고 말한다. 김희선은 “(너가) 기어이 첩으로 살겠다는 거니”라고 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고, 요가를 하며 브런치를 한다고 해서 우아해지지 않음은 물론이다. 그들은 본색은 숨기지 못해 수시로 구린 모습들이 나온다. 시청자들은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우아한 척 하기는”이라는 심정으로 보게 된다.

남자 캐릭터는 여성보다 더하다. 강기호(이기우) 변호사처럼 준수한 캐릭터가 가뭄에 콩 나듯이 있지만 하나같이 찌질이 밉상 아니면 조폭형, 돈은 많이 벌지 몰라도 품위가 전혀 뒷받침 되지 않는 인간들이다.

딸의 미술 선생과 바람을 피다 걸린 우아진(김희선)의 남편 안재석(정상훈) 전무와 그의 아버지인 대성펄프 안태동(김용건) 회장간의 대화는 속물성과 찌질함의 극치를 보여주었다.

정상훈은 내연녀 윤성희(이태임)과의 관계를 아내 우아진에게 받아들이라고 말하는 인간이다. 조선시대도 아닌 지금 두 여자와 하께 살겠다는 남자다. 자신도 8살때 아버지를 잃었기에 딸 지우에게 만큼은 상실감과 배신감을 안겨주고 싶지 않은 우아진의 마음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 처럼 정신 못차리는 남자들이 곳곳에 있다.

딸 같은 간병인 박복자(김선아)와 결혼한 그의 아버지 김용건은 젊은 시절 무지막지한 난봉쟁이 바람둥이였다. 지금은 당뇨 합병증으로 기력이 쇠했지만, 숟가락만 들 수 있으면 여자와 정을 통하고 싶은 게 남자라는 그런 말의 실제 사례를 보여준다.

김용건이 아들 정상훈에게 호통 치며 하는 말은 “왜 불륜을 저질렀냐?”가 아니다. 그것은 아들에게 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될 수 있다. 그래서 하는 말이 “너는 바람피는 것도 아진이(김희선) 도움을 받아야 하냐”다. 실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품위있는 그녀’는 이처럼 속물형 캐릭터들을 대량 구축해놓았으니, 작은 사건만 만들어도 임팩트가 세진다. 그들의 거만하고 가식적인 삶이 그 민낯과 허상을 드러내며 균열하는 순간이 재미를 더하게 된다. 지난 15일 방송된 10회에는 임신, 불륜 발각, 난투극, 실신, 오해로 인한 다툼 등이 이어지면서 시청률이 7%대까지 올랐다.

캐릭터는 충분히 자극적이고 상류층의 민낯을 까발리며 그 허상을 드러내고 있다. 상류사회에 있다고 믿는 속물들과 상류사회에 입성하려는 하류들의 적나라한 싸움과 암투들이 극에 달했다.

이제 벌려놓은 캐릭터들을 주워담아야 할 단계다. 이들의 민낯을 파헤치는 것으로, 하류층과 상류층 사이에 있는 유리천장은 투명하지만 견고하게 막혀있어 오를 수 없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뭔가 던지는 메시지가 있을 것이다. 이 드라마는 정리를 잘 하지 못하면 캐릭터들이 어지러이 굴러다닐 수 있다.

‘밀회’는 캐릭터의 정리를 깔끔하게 잘해 명작이 된 드라마다. 불륜의 드라마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하는 성찰의 드라마가 된 것이다. ‘품위있는 그녀’도 또 하나의 ‘밀회’처럼 뭔가 한 방 날리는 드라마가 되기를 기대한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