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90분…한국 도운 이란의 ‘스포츠맨십’ 투혼

-한국:우즈벡 무승부로 3, 4위 탈락 위기…아즈문의 2골로 한국 본선 진출 확정
-1993년 카타르 ‘도하의 기적’ 재연? 당시 종료 10초전 이라크의 만회골에 버금

[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2018년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을 향한 ‘단두대 매치’에서 한국이 마지막 순간 웃었다. 그러나 그 여정은 험난했다.

한국은 우즈벡과의 90분 혈전에서 총 3번이나 슛이 골대를 때리는 불운을 겪었다. ‘슛이 골대를 맞추면 진다’는 축구계의 속설에도 불구하고 한국팀은 끝까지 무실점으로 골대를 지켰다. 그 결과 비록 자력 2위(본선 진출행)는 아니지만, 이란과 시리아가 극적으로 비김에 따라 한국의 9회 연속 월드컵 본선행이 확정됐다. ‘진인사대천명(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의 자세가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날 동시에 진행된 한국:우즈벡전과 이란:시리아전 직전 한국이 속한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A조 순위는 이란(승점 21점), 한국(14점), 우즈벡(12점), 시리아(12점), 중국(9점), 카타르(7점) 순이었다.

이란 국민들이 이란:시리아전을 응원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이동국이 한국:우즈벡전에서 슛을 시도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한국:우즈벡전의 승자가 A조 2위로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하게 되나 만약 두 팀이 비길 경우, 이란:시리아전에서 시리아가 이길 경우 시리아가 2위, 한국과 우즈벡이 3, 4위로 떨어지는 복잡한 구도였다. 한국, 우즈벡의 치열한 접전 끝에 두 팀 모두에게 최악의 경우인 무승부 상황이 연출됐다. 마침 시리아는 이란에 선제골을 넣으며 극적으로 2위 자리에 닿는 듯 했지만 이란이 2골을 넣으며 반격하고 다시 시리아가 1골을 만회해 최종 무승부로 마쳐 한국의 2위가 확정됐다. 월드컵 A조 1위이자 지난 9경기 무패 및 무실점 기록의 ‘강호’ 이란을 상대로 시리아는 두 골을 넣으면서 ‘3위’의 자격을 획득했다.

우즈벡은 이날 무승부로 시리아와 승점 13점 동점을 기록했지만 시리아에 골득실 차(시리아 1, 우즈벡 -1)로 뒤져 4위를 기록, 3위까지 주어지는 플레이오프 티켓도 잃은 채 본선 탈락을 확정했다.

이날 한국:우즈벡전은 손에 땀을 쥐는 한판 승부였다.

한국은 전반 1분 황희찬, 전반 45분 손흥민의 강슛이 잇따라 골대를 강타했고, 후반 33분 투입된 이동국이 후반 40분께 골문 앞에서 아슬아슬한 헤딩슛에 성공했지만 역시 골대를 맞고 나왔다. 이동국은 후반 43분 페널티지역 오른쪽을 단독 돌파해 오른발 강슛을 때렸지만, 골키퍼 선방에 막혔고 이를 다시 손흥민이 슈팅으로 연결했지만 골문을 벗어났다.

우즈벡 역시 파상 공세를 펼쳤다. 전반 21분 하이다로프의 중거리슈팅이 다행히도 우리 골대를 맞춰 위기를 넘겼고, 전반 32분 슈쿠로프의 페널티지역 대각선 슈팅, 전반 36분 세르게예프의 헤딩 슈팅은 골키퍼 김승규의 선방에 막혔다. 후반 29분, 후반 36분에는 잇따라 게인리히의 슈팅 역시 김승규 골키퍼를 넘지 못했다.

같은 시간 이란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펼쳐진 이란:시리아전에서는 시리아가 예상을 깨는 반전의 드라마를 썼다.

경기 시작 13분만에 시리아는 9연속 무실점의 신화를 쓴 이란을 상대로 선제골을 뽑아냈다. 약 30m 지점의 프리킥을 이란 골키퍼가 막아냈지만 시리아의 타메드 모함드 선수가 밀어넣었다. 홈경기에서 당한 일격에 당황한 이란은 그러나 이란 대표 골잡이 사르다르 아즈문(22)을 앞세워 전반 45분 기어이 만회골을 기록해 자국 팬들은 물론, 한국 국민들로부터 환호와 박수 갈채를 받았다. 아즈문은 왼쪽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이 골키퍼 맞고 나오자 몸을 던져 밀어넣었다.

이어 후반 19분 아즈문이 만회골에 이어 역전골을 넣었다. 스로인 된 공이 헤딩 경합 끝에 시리아 문전으로 흐르자 아즈문이 침착하게 골로 연결시킨 것이다. 이란이 승기를 잡으면서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2위에 오르는 유리한 상황이 전개됐다. 비록 시리아가 마지막 후반 추가시간에 다시 동점골을 넣어 승부를 무승부로 돌렸지만, 대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한국이 2위(승점 15점), 시리아 3위(승점 13점, 골득실 1), 우즈벡 4위(승점 13점, 골득실 -1), 중국(12점), 카타르(7점) 순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란의 나이 어린 ‘축구천재’ 아즈문의 도움으로 한국은 또 한 번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아시아예선의 ‘도하의 기적’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이다. 도하의 기적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본선에 이라크의 도움으로 극적으로 일본을 제치고 한국이 본선에 진출한 대사건이다.

1993년 10월 28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 예선 최종전에서 한국:북한전에서 한국은 3:0으로 승리했지만, 일본:이라크전에서 일본이 2:1로 이기고 있어 한국이 아닌 일본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적인 상황. 종료 10초를 남겨두고 이라크의 오만 자파르 선수가 천금같은 동점골을 넣어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3위에서 2위가 돼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다.

경기 후 한국에서 큰 인기와 감사 세례를 받았던 오만 자파르와 마찬가지로 아즈문 역시 한국 국민들에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선수가 됐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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