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읽기]어느 삼성OB의 고백

그는 이제 삼성의 전직 임원이다. 이상한 건 그가 잘나가던 시절보다 OB가 된 후로 삼성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그는 다짜고짜 이재용 부회장의 최후진술을 접하고는 “삼성에 희망이 보이더라”고 했다. 말인즉 이랬다.

그만두고 사회에 나와 보니 반기업 정서가 너무도 많이 느껴지더라. 삼성에 대한 반감이 특히 더하더라. 나도 책임이 있다. 너무 돈버는데만 급급했다. 그저 이익 많이 내고 인센티브 세게 받아 승진하자는 생각만 하며 살았다.

협력업체 납품단가 인하요구는 가장 손쉬운 이익확보 수단이다. 일년에 한 두번은 당연하게 납품가 인하를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물량이라도 늘려줬지만 이젠 그마저 어렵다는 게 마음에 걸리긴 했다. 납품할수록 마이너스인 사례도 없지 않다은 걸 안다. 접을 수도 없고 물량 끊기느니 어쩔 수 없이 하는 것도 있겠지.

하지만 그동안 돈 좀 번 것도 사실아니냐. 게다가 삼성 납품은 품질의 보증수표다. 우리한테서 자격증 따고 돈은 다른데서 벌면 되지. 좀 손해보더라도 길을 터보려고 대기중인 중소기업은 부지기수다. 안하면 그만이지.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이제 OB가 되어서야, 뭘 바꿔볼 힘이 없어지고 나서야 알게됐다는 것이다.

삼성의 앞날이 걱정되고 안타까운 와중에 최순실 사태가 터졌고 삼성은 나락에 빠졌다. 그때 이재용 부회장의 최후 진술이 눈에 확 들어온 것이다.

이 부회장은 5개월의 재판과정과 구속수감된 6개월 간 “답답하고 억울했지만 자신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다”고 했다. “삼성의 성취가 커질수록 국민들의 기대는 더 엄격하게 커졌다는 사실을 간과했다”고 인정했다. 심지어 모두 자신의 탓이라고 했다.

그러니 뭔가 방법을 찾으려고 할 것이다. 쉽지는 않은 일이다. 그동안 해보지 못한 고민이다. 그를 둘러싼 참모들도 마찬가지다.

삼성OB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말했다.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엔 기업보국이 있었다. 당시 연수원 교육에는 언제나 가장 먼저 나오는 말이 기업보국이었다. 돈버는 일이기도 했지만 국민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일과 직결됐다. 헐벗고 배고픈 시절이었다.

놀러갈 곳도 마땅치 않는 시절이었다. 옷감 밀가루 설탕에서 건설 자연농원 그리고 수출로 이어진 삼성의 기업사와 일맥상통한다. 에버랜드에서 돼지를 기업형으로 키우려다가 접은 일도 따지고 보면 고기 더 싸게 먹이자는데서 출발했다.

이건희 회장을 두고 반도체 대박만 얘기하지만 그가 진정 사회에 영향을 미친건 문화였다. 마누라와 자식빼고 다 바꾸라는 건 삼성문화가 시도를 의미했다. 출퇴근을 9 TO 5에서 7 TO 3로 바꾸며 뭔가를 배우든 놀든 하라고 직원들을 내몰았다.

오늘날 정치인들이 잘 써먹는 ‘저녁이 있는 삶’이 바로 그거다. 장례식장의 밤샘 고스톱과 바가지 수의가 없어진 건 삼성의료원 덕분이다. 장의문화에 일대 혁신이 거기서 일어났고 이젠 보편화됐다.

세상에 이보다 더 가치있는 사회공헌도 없다. 기업이 돈 벌어 이익 내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사회를 선도해 나가려는 노력을 보일때 사람들은 기업에 애정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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