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 마광수 교수의 숨겨진 고통은?

“오늘 하루종일 전혜린의 수필집과 일기 및 서한집 두 권을 읽었다. 고독에 찌들고 가정생활의 부조(부조 )에 찌들어 괴로워하는 그 여자의 시름이 내 시름처럼 가슴에 와 닿았다./ 너는 지금 나를 보고 싶어하고 있을까? 모르겠어. 사랑에 빠지게 되면 언제나 이쪽만 손해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니까./ 너를 사랑해. 아주아주 미치도록. 지금 난 너 때문에 살아가는 것 같아. 하지만 헤어질 때마다 굳어 있는 네 표정을 보면 죽고 싶어져. 실컷 포옹이라도 나서(뽀뽀도 물론 왕창하고) 헤어지고 싶은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구.”

이는 1992년 3월에 마광수 씨가 혜진이라는 여성에게 쓴 연애편지의 일부이다. 필자가 기획한 『작가들의 연애편지』(2006년) 속에 27명의 작가들의 연애편지들과 함께 들어있다. 다른 유명 작가들의 거침없는 연애감정 토로에 비하면, 그의 연애편지는 수줍고 이성 앞에서 표현을 망설이는 소년의 감성을 느끼게 한다. 심지어 그는 이 편지를 써놓고도 결국 띄우지 못했다. 작가들의 연애편지가 문학텍스트로 자리매김하도록 기획된 이 책을 통해, 마광수 씨의 연애편지도 세상에 공개되었다.

『작가들의 연애편지』가 인연이 된 뒤로, 마광수 씨는 자신의 신간이 나오면 곧잘 보내주곤 했다. 다른 이들에게서 오는 책들과 마찬가지로, 책을 받으면 감사인사를 전하곤 했다. 책이 올 때 한 번씩 통화한 정도니 2년에 한번 꼴이나 될까. 별로 긴 통화는 아니었지만 그의 상황을 감지하기에는 충분했다. 필자에게조차 충격적으로 와 닿았던 통증은 필화로 감옥 생활을 겪고 나서 생겨난 ‘자기검열’이었다. 그 사건 후, 글을 쓸 때마다 자신의 글을 검열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 끔찍하게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고통은 출판사들이 예전처럼 자신의 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사실 마광수 씨는 필화사건을 겪으면서도 출판사들로부터 나름 구애를 많이 받아온 작가였다. 그런데 점점 출판계의 거절을 경험하면서 충격을 받는 듯 보였다.

그런데 그가 타계한 후, 예상 못했던 관심이 그에게 쏠리고 있다. 중고시장을 떠돌던 그의 책이 몇 배의 가격으로 오르기도 하고, 다시 재판을 찍는 등 소란스럽다. 다행인 것은 그가 가는 뒷모습을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필화사건으로 생겨난 자기 검열과 그 후 지속된 도덕적 검열로 사회와 차례차례 단절되어 갔다. 은퇴함으로써 제자들과도 멀어졌고, 세상과의 소통은 거의 책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그런데 출판의 벽이 점점 높아지자, 그는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문이 점점 닫히고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마지막 공기구멍이 막혀가는 듯 숨막혀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작금의 그에 대한 높은 관심이, 조금 남달랐던 작가에 대한 마지막 배웅인지 아니면 그가 그렇게 우려하던 닫혀버릴 것 같던 독자와의 문을 다시 활짝 열어젖히는 과정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아직은 알 수 없다. 만약 이 예외적인 관심이 앞으로 특정 독자층을 형성하게 되면, ‘소돔의 120일’을 쓴 프랑스의 사드후작처럼 문학의 독특한 영역으로 자리매김 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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