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 치누크 헬기 도입, 정치적 의도 vs 합리적 문제 제기

-1500억원 예산 투입 중고 헬기, 효용성 갑론을박

-미군, GPS 프로그램 인도 약속 2차례 어겨

-김관진 전 국방장관의 검토 지시 후 신속 추진 논란 남아

[헤럴드경제=이정주 기자] 최근 박근혜 정부가 45년 된 ‘중고’ 치누크(CH-47D) 헬기 구매에 1500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가 이 헬기들에 대해 성능개량 불가 판정을 내리면서 본격 불이 붙은 셈이다.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CH-47D의 전력소요 검토지시’ 문건까지 공개하면서 당시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의 구매 검토 지시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다.

이 의원의 문건 공개와 일부 매체 보도 이후 후속 보도를 통해 중고 헬기 구매의 효용성, 부품구매 가능성, 김 전 장관 지시의 정당성 등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형국이다. 국방 현안에 관심 있는 일부 네티즌들까지 가세해 ‘팩트 체크’에 열을 올리면서 논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24일 국방 전문가 등에 따르면 치누크 헬기 구매 논란의 쟁점은 ▷GPS 프로그램 설치 지연 ▷중고 헬기 효용성 ▷개량사업 배제 과정 ▷부품 판매중단 여파 등으로 수렴된다. 오해의 소지가 있는 몇몇 부분을 제외하면 제기된 문제는 대부분 사실인 것으로 밝혀졌다.

다수 매체의 후속 보도를 통해 드러난 부분을 생략하고 살펴보면 특히, 미군이 헬기 판매 이후 넘겨주기로 한 GPS 프로그램의 인도 지연은 심각한 것으로 보인다. 우리 군은 지난 2014년 구매 당시 GPS가 연동된 항법장비가 제거된 헬기를 넘겨받아 악천후 때와 해상 임무에는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 

당초 미군이 약속한 인도 시한을 2번이나 어긴 것으로 드러났다. 미군이 GPS 프로그램을 넘기기로 약속한 1차 시한은 2016년 3월이었다. 그런데 미군은 약속한 날짜에 인도하지 않고 한참을 넘긴 2016년 11월에야 이듬해인 2017년 5월에 주겠다고 우린 군에 통보했다. 인도도, 통보도 하지 않은 중간에 비어 있는 8개월에 대해 문서로 기록된 정황은 아직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미군은 2차 인도 시기인 2017년 5월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결국 오는 10월말 GPS 프로그램을 넘기면서 탑재가 가능할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우리 군의 태도다. ‘정당하게’ 값을 치르고 도입하는 무기에 대해 인도 지연이 발생했을 당시 미군에 공식 항의를 하거나, 계약서 작성시 ‘패널티 조항’ 등이 없었다는 점이다. 정상적인 시장경제에서 이뤄지는 계약에서는 소비자와 공급자가 계약 후, 예고도 없이 공급자의 물품 인도가 2차례나 늦어질 경우 상응한 패널티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군이 그동안 전 세계 국가들에게 중고 무기 판매하는 과정 자체가 ‘수혜적’인 개념으로 이뤄져 온 관행이 있었다”며 “역사적으로 미군의 무기 거래 시발점이 정상적인 계약관계와 달라 항의나 패널티 거론이 힘든 측면이 있다”고 귀띔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한국과 미국의 특수성, 군수품이라는 특수성을 고려하더라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인도 날짜 등을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향후 무기 도입 과정에서도 재발의 우려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45년 된 중고 헬기’의 효용성에 대해선 의견이 나뉜다. 기체와 별도로 엔진을 신형으로 갈아끼울 수 있는 헬기 개량의 특성상 대당 약 500억원에 달하는 치누크 헬기를 대당 58억원에 구매한 것은 나름 ‘남는 장사’라는 분석이다. 


성능 개량을 해도 수명을 담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개량 사업에서 제외키로 지난달 확정된 부분도 사실이지만 해석의 여지가 있다. 우리 군은 2014년 헬기 도입 당시 헬기의 ‘성능개량’을 고려하지 않고 오는 2030년 혹은 2031년까지 약 15년을 운용할 자원으로 치누크를 구매했다. 예를 들어 중고차를 구매해 일정 기간 쓰고 폐차시키더라도, 중간에 수리하는 것에 비해 가격 대비 효율이 높은 경우가 있는 걸 감안하면 설득력 있는 대목이다.

쟁점은 2014년 구매 이후 과거에 도입한 치누크 헬기와 함께 ‘성능개량’을 고려하던 중 타당성이 낮아 포기하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점이다. 원래 계획과 달리 중간에 갑자기 ‘성능개량’을 고려한 과정을 탓할 순 있을지 몰라도, 원점으로 돌아가 당초 계획대로 15년 가량 운용하겠다는 결론이 이전과 이율배반인 것은 아니다. 

부품판매 중단은 현실적으로 민영 회사를 통해 구매가 가능하다는 게 중론이다. 미군 측은 2015년에 헬기 수리를 위한 부속 판매를 오는 2018년 중단하겠다고 통보했다. 미군의 FMS(대외군사판매) 중단 통보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부품 조달은 가능하다. 문제는 수요, 공급 변화에 따라 부품 가격의 변동성이다. 부품의 가격 상승과 하락의 가능성이 양쪽 모두 공존해 논쟁의 여지가 있다.

가장 ‘뜨거운 감자’는 김관진 전 장관이 주한 미군이 노후 치누크 헬기 구매를 제안한지 불과 이틀 만에 전격 구매 검토를 지시한 부분이다. 이 의원이 공개한 ‘CH-47D의 전력소요 검토지시’ 문건에 따르면 지난 2012년 7월 23일 주한미군의 구매 제안 서한을 접수한지 이틀 만에 김 전 장관은 조찬 간담회에서 검토를 ‘구두로’ 지시했다. 문건은 같은해 7월 27일 작성됐다.

또 이 의원실이 공개한 미 육군안보지원사령부 서한에서 주한미군이 국방부에 보낸 치누크 헬기 구매 제안 문서는 전체 분량이 A4용지 5장에 불과했다. 문서 내 정보도 치누크 헬기의 가격과 비행시간 등 기초적인 것에 불과해 제대로 된 검토가 불가능했다는 지적이다.

합참은 이에 대해 “당시 육군과 공군에 관련 내용을 검토한 결과, 치누크 헬기 14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2012년 12월말에 구매를 결정했다”며 “이후 2013년 3월과 8월에 두 번에 걸친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사업타당성 조사 결과 적정 의견이 나와 추진했다”고 답했다.

김 전 장관의 검토 지시가 내려간 2012년 7월 이후 구매가 확정된 그해 12월까지는 약 5개월의 시간이 존재했다. 5개월이란 시간이 검토에 ‘충분한가’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이견이 있었다.

한 전문가는 “치누크 말고도 우리 군이 필요한 전력들이 즐비한 상황에서 주한미군의 ‘구매제안’으로 시작한 이 사건은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추진됐다는 점에서 오해의 여지가 있다”며 “정치권의 문제 제기로 시작된 이번 논란이 아마 다음달 국정감사의 테이블에 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이래저래 전 정권과 현 정권 사이에 낀 국방부가 난감한 상황에 처한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sagamore@heraldcorp.com

사진1. 치누크(CH-47D) 헬기

사진2.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

사진3. 이철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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