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태의 일상 속으로] 추석, 어제와 오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은 어디서나 떠오른다.추석은 여름 뜨거운 햇살 속에 흘린 땀과 풍요로운 수확을 기뻐하며 길 위에 사라진 이를 위한 차례상을 준비해야 할 온 가족이 모여 도란 도란 송편을 빗거나 음식을 장만하여 재회의 기쁨을 먹고 나누는 날이다.
내 어릴 적 초등학교 6학년 때 추석 전날 밤 좁은 골목길에 소스라치게 울려 퍼지는, 날카롭게 찢어지는 비명소리에 놀라는 식구들은 송편 빚기를 잠시 멈추는데 어머님은 “아랫집 단칸방에 세들어 사는 새댁이 만삭이 되어 애를 트는 모양이다, 남편은 오징어 배 타러 갔는 가본데 혼자서 어떡하누” 하셨다 .

간헐적으로 숨 넘어가는 비명소리에 어린 나까지도 어깨가 조여지듯 비명소리에 맞추어 숨까지 멎게 된다. “응애~” 애기소리에 온 식구가 한숨을 놓으며 몸을 내려 놓는다. 숙모님은 “쟤는 먹을 복도 많겠네. 생일이 추석 전날이어서”하신다.

사실은 배가 불러 뚱뚱한 몸으로 한참 여름 더위에 못이겨 큰 고무 다라이(대야)에 목욕하는 것을 우리집과 연결된 판자 울타리 뚫어진 옹이구멍으로 물 끼얹는 소리만 들리면 몰래 들여다보곤 했었다 .

누이동생 하나없이 아들만 사형제에 아버지까지 남자만 다섯명에 여자는 엄마 뿐이어서 사춘기들어서는 나에게는 남다른 관심거리였다. 이튿날 추석오후 친척들이 뿔뿔이 돌아가고 난 후 아래 새댁 집이 긍금하여 나무 쪽 대문을 살며시 열자마자 바라보이는 부엌에는 아무 기척도 없고 냉기만 감돌았다. 생뚱맞은 어린 생각에 애기 낳고 미역국 끓여 먹는다는데 싶었는데 불기운이 하나 없이 싸늘하여 연탄 아궁이 뚜껑 철판을 열어보니 연탄불이 꺼져 있었다.

어린 나의 생각에도 이건 아니다 싶어 우리집 웃방 아궁이에서 시뻘건 연탄을 집게 꺼내들고 새댁 아궁이에 넣고 그 위에 새연탄 한개 더 얹어넣고 나와서 우리집 장독대 항아리 중에 내 키만큼 큰 장독 뚜껑을 열고 그 속에 있는 오징어 대구포 북어포 가자미 미역 다시마 등 온갖 건어물 중에서 미역 한올과 쌀 한 바가지 푹 퍼서 새댁 부엌에 두고 나왔다 .

도회지로 중학교 입학하여 하숙하던 나는 여름방학이 되어 고향에 내려가 어머님이 운영하는 포목상점 길목에 들어서는데 누가 교복 옷자락을 당기기에 깜짝놀라 뒤돌아보니 아랫집 새댁이었다. 광주리 과일 장사하는 새댁의 등에는 어린 애명이 개똥이라는 사내아이가 업혀져 있었다. 작년 추석날 있었던 내가 한 일들을 다 알고 있었다하며 고맙다고 진심을 담은 표정을 보여주었다.

그후로 고등학교 대학교로 진학하면서 숱한 추석이 오고 지나갔지만 기억에 남는 추석은 없었다. 오히려 하숙집 주인집에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요란한 음식장만은 나의 마음만 더욱 울적하게 만들고 돈 내고 먹는 하숙밥도 명절날만큼은 주눅이 들고 얻어 먹는 기분 같아서 자취하는 친구집이나 식당에서 사먹는 밥이 한결 마음 가벼웠다.

홀로 이민 생활을 하면서 맞이 하는 명절까지도 멜랑꼴리한 감정이 들곤 한다. 복에 겨운 추석도 외로움에 뒤엉켜 맞는 명절, 넉넉한 가족의 따뜻한 손길이 넘치는 추석 특유의 감성없이 언제까지일지 모르는 내 나이에 무심히 쳐다보는 저 달이라고는….

달은

소식 없는 사람을

큰 물방울을 두 눈에 담고

소리없이 울 줄 아는

말없이 돌아가는

세상을 담고 있다

소리없이 흐느끼는

소리없이 머리위로

하얀 눈물로

서리꽃으로 얼어 붙어

그리움으로 하얗게 쌓고 있다

온 세상으로 하얀 천으로

덮어질 때까지

우리는 서서

바라보는

넋을 지녔다 .

자작시 <보름달>

계절이 바뀌어 꼬박꼬박 찾아오는 추석명절의 풍성함과 상관없이 생계를 각정하는 노동자, 다문화 가정, 햇볕없는 지하 단칸방에서 곰팡이와 함께 천식과 기관지를 앓고 있는 저소득층과 독거노인의 우울증. 이들 앞에 향하는 따뜻한 손 내미는 이 찾아볼 수 없고 노동자 임금체불과 근로수당 착취하고 상처를 주는 비정하고 야속한 추석이 또 다가오는 건 아닌가 걱정스럽다.

우리 앞에 놓인 텅빈 들판 같은 황량함. 소슬한 가을 바람만 옷깃을 여미게 하는, 가슴 시리게하는 명절이 오는 가싶다. 어수선한 국내외 정세에 부모형제간에 따뜻한 만남을 이루기 보다 해외여행을 떠날 계획에 빠져 있는 그런 추석이 아니었으면 싶지만 그 또한 부질없는 칠순 ‘꼰대’의 습관성 희망사항일은 아닐까.

이상태(핸디맨)이상태/시인·핸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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