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태의 세상 속으로] 동병상련의 새벽

새벽 4시가 다 돼 한국에 있는 초등학교 여자동창에게서 카톡 음성 통화가 걸려왔다. 약간 술 취한 목소리로 멀리 미국에 있는 나에게 하소연 한단다.

자기 생일이 되어 아들 딸이 살고 있는 제주도에 와 있다고 했다. 재미있게 식구끼리 밥이나 먹자고 초청해서 갔다고 한다. 야경을 바라보며 마시던 포도주 잔을 내려 놓은 딸이 하는 말 “엄마는 날씬하고 세련 되게 보이는데 남자 친구 한명 없어요”하는데 “왜”하고 물으니 연애를 하든지 재혼을 하라고 한다. 이유는 자기들에게만 향하는 시선을 피하고 싶고 엄마가 나중에 아프게 되면 돌봐줄 사람을 미리 만들어 놔야 하기 때문이란다.

엄마는 유공자의 딸이라서 나라에서 연금도 나오고 자기들이 매달 용돈도 드려서 생활이 넉넉하지 않느냐고 한다.사위는 영화배우이고 딸은 연예계에게 일하며 아들은 운동선수로 은퇴하여 코치로 일한다. 자식들에게만 매달리고 자주 들락날락하며 온갖 간섭하는 것이 부담스럽고 귀찮다 하더란다. 번듯한 엄마가 왜 애인 한명 못 만드냐고 한단다.

사실 자기는 외롭기도 하고 아직 시들지 않은 성욕이 문득 일어날 때가 있어 ‘원 나잇 스탠드’를 하고 싶어도 겁이 난다고 한다. 제비한테 걸리면 여자가 돈이 없어도 잘 사는 아들 딸 사위 며느리에게까지 공갈하여 돈을 뜯어가는 세상이니…. 남자만 그럴까. 꽃뱀도 있다는데.

남녀가 서로 만나 연애할 때는 서로 평등의 원칙 아래서 교제하지만 일단 몸을 허락하고 나면 경계가 무너져 180도 달라진다. 결국에는 따끈 따끈한 떡이 식어서 굳어버린 떡과 같다.

인간은 원시인 방식과 별 차이가 없다. 주고 받는 것, 섹스도 인간과 나눌 수 있는 가장 친밀한 유대의 형태이며 몸 전체를 통해 의사 소통과 감정이 교류된다.

그 상대를 고르기가 마치 도박과 같이 여겨진다. 그녀와 나는 똑같은 이혼녀 이혼남인 것이다. 그녀의 남편은 정치기자 출신이며 나는 건축기술사 였다. 둘 다 결혼하여 애들을 낳아 길렀다. 결혼 하지 않으면 죽을것 같아 결혼한 것도 아니다.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결혼생활. 궁핍하거나 폭력적인 관계는 전혀 아니다. 살면서 드러나는 성격차이로 껍데기만 남은 파탄이다. 경제적으로 넉넉함에 의지하여 외도를 알면서 각방까지 쓰면서 사춘기 자녀 때문에 자녀들이 학교를 마치자 마자 이혼을 했던 것이다 .

가늠 할 수 없는 깊이에서

내가

왜 빠지고 싶은지

나도 몰라

여자의 다리밑엔

전부를 모아 쌓은

섬이 있다

넘실대는

파도 위로 검은 운명이

잠든 여인의

꽃 강물이 흐른다

빛은

언제나 음영을 거느리고 찾아들듯

빛이 외면한 깊이에

욕망의 불을 밀어 넣는다 .

- 자작시 <늪>

60,70대가 되어도 육체의 성욕은 결코 늙지 않는다. 홀로 밤이 되면 어둠이 스물 스물 뇌졸중 걸린 환자가 된다. 외로워 보지 않으면 외로운 종기의 가려운 고통을 모른다. 친구는 한시간 넘게 넋두리를 하다가 이제 좀 시원해졌다고 하며 새벽잠을 깨워 미안하다고 한다. 너는 유일한 친구이고 동병상련 지기여서 편하다고 하며 카톡을 끝낸다. 속으로 ‘야, 기집애야! 나도 기래(그래)’ 강원도 사투리를 뱉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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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태/시인·핸디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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