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합지졸’ 토종제약사.. 특단대책 없이는 글로벌제약사에 들러리 신세 못면한다

-청구액 상위 100대 품목 중 순수 국내의약품 23% 불과
-청구액 1위 기업 화이자…제품은 ‘비리어드’ 최다
-국내 제약산업 육성 위한 정부 지원과 컨트롤 타워 필요

[헤럴드경제=손인규 기자]국내 제약산업이 국내에 진출해있는 다국적 제약사들에게 휘둘리고 있다. 국내 제약사 수는 다국적 제약사 수에 비해 4배 이상이나 많지만 ‘풍요 속 빈곤’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반면 다국적 제약사는 국내 제약사에 비해 많은 수가 아님에도 국내 제약산업을 좌지우지 할 만큼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제약산업에서 국내 제약사들의 선전을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의약품 청구액, 다국적 제약사 비중 65%=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오제세 의원이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으로부터 받은 ‘2016년도 의약품 청구액 상위 100대 제약사와 품목’ 현황에 따르면 상위 100대 기업에 국내 제약사는 68곳, 다국적 제약사는 32곳이 포함됐다. 청구액은 국내 제약사가 8조3286억원으로 62%를 차지한 반면 다국적 제약사 청구액은 5조802억원으로 38%를 차지했다.

의약품 청구액은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는 전문의약품이 병원에서 처방된 뒤 병원이 심평원에 청구하는 의약품 처방액을 말한다. 의약품의 절대적인 매출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청구액이 높다는 건 그만큼 시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의약품이며 매출 역시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의약품 청구액 상위 100대 기업에 포함된 국내 제약사가 다국적 제약사보다 많았지만 실제 청구액 상위 100대 품목은 사정이 달랐다. 다국적 제약사 제품이 58개로 국내 제약사 제품 42개보다 오히려 많았다. 청구액 비중은 더 큰 격차를 보였다. 다국적 제약사 청구액이 2조1350억원으로 65%를 차지한 반면 국내 제약사는 1조1685억원으로 35%에 불과했다.

의약품 청구액 상위 100개 품목을 원개발 기준으로 분석할 경우 상황은 더 심각했다. 상위 100개 품목 중 순수 국내의약품은 27개에 그쳤다. 청구액은 7579억원으로 23%밖에 되지 않았다. 오 의원은 “표면적으로는 국내 제약사가 다국적 제약사 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 주요 의약품 시장은 다국적 제약사에게 잠식당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화이자제약’ 청구액 기업 1위…제품은 ‘비리어드’=의약품 청구액 상위 기업과 제품을 살펴보면 두 분야 1위는 모두 다국적 제약사와 다국적 제약사 제품이 차지했다. 지난 해 의약품 청구액 1위는 ‘한국화이자제약’이 5211억원을 기록해 1위였다. 2위는 4804억원을 차지한 ‘종근당’이 차지했다. 3위는 ‘한미약품’(4483억원), 4위는 ‘한국노바티스’(4332억원), 5위는 ‘한국MSD’(4269억원)으로 나타났다.

6~8위는 국내 제약사인 ‘대웅제약’(4107억원), ‘CJ헬스케어’(3182억원), ‘동아에스티’(3182억원)가 차지한 반면 9~10위는 또 다시 다국적 제약사인 ‘길리어드사이언스코리아’(3006억원)와 ‘한국로슈’(2979억원)가 각각 차지했다. 상위 10대 기업 중 국내 제약사는 절반에 불과했다. 상위 20위권으로 봤을 때 국내 제약사는 9곳으로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부동의 1위 화이자는 2015년에 이어 선두 자리를 지켰고 오히려 전년 2위였던 대웅은 4계단이나 하락했다. 반면 9위에 랭크된 길리어드의 경우 무려 17계단이나 순위가 상승했다.

의약품 청구액 상위 품목으로 보면 국내 제약사 성적은 더 초라하다. 지난 해 가장 많은 청구액을 기록한 제품은 길리어드의 ‘비리어드’로 1477억원에 이른다. 2위 화이자 ‘리피토’의 866억원을 압도하는 수치다. 이어서 3~6위까지도 모두 다국적 제약사 제품이 차지하고 있다. 3위 ‘바라크루드’(854억원), 4위 ‘소발디’(832억원), 5위 ‘휴미라’(644억원), 6위 ‘플라빅스’(643억원)로 나타났다.

7위에서야 국내 제약사 제품이 나온다. 녹십자의 ‘정주용헤파빅’이 635억원으로 7위를 차지했다. 이후 10위까지 ‘하루날디’(622억원), ‘프로그랍’(589억원), ‘애드베이트’(575억원) 등 10위권 제품 중 국내 제약사 제품은 한 개뿐이다.

20위권으로 봐도 삼진제약의 ‘플래리스’(527억원), 대웅제약의 ‘알비스’(443억원)가 추가돼 총 3개만이 국내 제약사 제품이 상위 품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런 현상은 아직 국내 제약환경이 제네릭의약품보단 오리지널의약품 위주로 처방이 되는 분위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사들은 국내 시장에 주로 오리지널 제품을 들고 진입을 하고 있고 국내 제약사들은 대부분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가 만료된 뒤 제네릭 제품으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한 제약업계 관계자는 “아직까지 국내 의료진은 제네릭보단 오리지널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며 “특히 처방액 상위권을 차지하는 만성질환 치료제들의 경우 한 번 쓰기 시작하면 좀처럼 약을 바꾸지 않는다는 점 때문에 먼저 처방이 시작된 오리지널 제품의 처방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산업 육성 위해 정부 지원 필요=이런 특수한 제약 환경에도 불구하고 청구액 상위권을 대부분의 다국적 제약사 또는 제품이 차지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국내 제약산업 대표 단체인 ‘한국제약바이오협회’ 회원사는 200여곳에 이른다. 반면 한국에 진출한 다국적 제약사 모임인 ‘한국글로벌의약산업협회’ 회원사는 40곳에 그친다. 일본 제약사 20여곳이 글로벌의약산업협회에 들어가 있지 않고 일부 다국적 제약사가 제약바이오협회 회원으로 들어가 있긴 하지만 수적으로 다국적 제약사 수는 국내 제약사의 4분의 1 수준이다. 그럼에도 의약품 청구액 대부분은 다국적 제약사가 주도하고 있다.

오 의원은 “미래 먹거리 산업인 제약산업 활성화를 위해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토종 제약기업을 육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 역시 “기존 정부가 추진했던 제약 산업 육성 정책을 보다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무엇보다 산업 육성을 위한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부처를 하나 정해서 A부터 Z까지 균형있고 통일성있게 추진이 돼야 국내 제약사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ikso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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