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황동혁 감독이 하고싶었던 말

[헤럴드경제 =서병기 선임 기자]영화 ‘남한산성’의 황동혁 감독은 김훈 작가가 쓴 소설 ‘남한산성’을 읽고 영화화를 결정했다.

“병자호란시 주화파와 척화파, 삼전도의 굴욕 정도만 알고있었지만, 소설을 바탕으로 역사서를 읽으면서 부끄럽기도 했고 새로운 사실을 아는 게 흥미롭기도 했다.”

황 감독은 주화파 최명길(이병헌 분)과 척화파 김상헌(김윤석 분)의 시(詩) 같은 토론의 열기와 에너지를 전달하고 소개해주고 싶었다. 이번 영화로 황 감독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두 가지 방법중 누구를 택할 것이냐”다. 


“제가 답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이 영화로 질문을 던졌다. 답은 저보다 뛰어난 분들이 찾을 것이다. 집단지성을 통해 답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의미가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보다는 두 이야기가 만나 쌓여가면서 종합적인 관점에서 해답을 찾는 게 위기 극복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방식은 둘 다 나름대로 근거가 있다. 신하들의 비웃음을 사면서까지 청과의 강화를 주장한 최명길의 용기는 인정할만하다. 척화를 주장한 김상헌도 주화파 방식이 선택되자 칼로 자결한다. 실제 역사에서는 김상헌의 자살 시도는 있었지만 죽지 않았던 반면, 영화에서는 김상헌이 자살로 죽는다. 그만큼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여기서 황 감독은 “논리적으로는 최명길, 심정적으로는 김상헌의 말이 맞았으면 한다”고 했다.

영화에서는 문제가 많은 인물로 두 신하가 아닌 영의정 김류(송영창)를 꼽는다. 인조가 두 사람의 상반된 의견과 논리를 들어보다 두 가지의 옳고 그름을 논하지 않고, 영의정에게 면박을 준다. 기회주의적이고, 책임을 질줄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영의정 김류는 위기 상황이 될 때마다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실적인 인물이다. 김류도 인조반정의 1등공신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실제 역사에서 그의 아들 김경징도 피난 길에 가족이기주의에 빠진다. 영화에서 인조가 영의정에게 가끔 한방 먹이는 것은 역사에는 없지만 제가 집어넣었다. 여기서 속시원하고, 빵 터졌다.” 


하지만 병자호란후 최명길과 김상헌은 전란속에서 펼친 의견대로 행동하지는 않은 것 같다. 인조반정으로 집권한 서인인 두 사람 중 최명길은 노론으로 권력이 약화됐고, 김상헌은 순조때 안동 김씨의 세도 정치 틀을 잡은 김조순이 직계 후손으로 백성보다는 관료들의 배를 불리게 했다.

그렇다고 영화는 두 의견중에서 취사선택한 인조에 감정을 이입하지 않는다. 조선시대에 가장 찌질한 왕중 한명으로 꼽히는 인조를 무력하게 그리기 위해서 청 태종(홍타이지)을 위엄있게 묘사해 조선 왕의 굴욕 상황을 알린다.

“왕의 조상이 있는 종묘를 제외하면 누구에게도 머리를 숙이지 않는 한 나라 왕이 갓을 벗고 높은 단에 있는 청 태종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는 것만으로도 큰 굴욕이다. 호탕한 청태종이 ‘내가 고작 작은 성곽 따위를 무너뜨려야겠느냐. 제 발로 걸어 나오게 해야지’라 말하거나, 새해가 되자 조정에서는 여전히 명나라를 향해 예를 올리자 청 태종이 ‘쏘지 마라’라고 할때, 우리가 훨씬 더 비참해진다.”

이런 굴욕 상황은 인조에게 고스란히 전해졌을 것이다. 이밖에도 황감독은 백성을 위한 정치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장치들을 곳곳에 넣었다. 


남한산성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원래 백성들은 요즘 말로 완전히 재수 옴 붙은 거다. 건초가 없어 말이 굶자 병사에게 방한용으로 나눠준 가마니를 뺏어 말에게 먹였다. 이때문에 병사들은 손발에 동상이 걸렸다. 그래도 말들이 죽어나가자, 이제 말을 잡아 병사들에게 먹인다. 말고기를 먹던 병사는 “그럴줄 알았으면 말이 살이 좀 쪘을때 잡아주지”라고 말한다. 생필품 수급정책 등 무능한 경제관을 보이는 인조를 질타한 말이다.

민초를 대변하는 대장장이 서날쇠를 연기한 고수가 목숨을 걸고 왕의 격서를 들고 성밖으로 나가지만, 왕이 아닌 백성을 지키기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부각시켰다.

“백성들의 삶과 분노, 좌절을 넣고 싶었다. 한 노병이 대포 맞기 직전, ‘싸우려면 한양에서 싸울 것이지 여기서 지랄이야 라고’ 하는 것도 그런 차원이다.”

진정 백성을 위한 삶은 황 감독이 소설에서 첨가했듯이, 최명길도 없고, 김상헌도 없고, 왕도 없어야 이루어진다는 ‘자조(自嘲)’가 울림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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