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없이 던진 말, 후배·제자에겐 성폭력이 될 수 있다

[헤럴드경제=박수현 인턴기자] #전날 같은과 오빠랑 심심해서 술을 마셨다. 그 오빠가 점점 야한 이야기를 하더니 ‘너 머리 올려줄까’라고 말했다. 무슨말이냐며 물었지만 오빠는 몰라도 된다며 웃어넘겼다.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 없었다.

17일 온라인상에 올라온 한 네티즌의 하소연이다. 게시자는 자신을 21살 여대생이라고 밝히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뉘앙스가 성희롱 같다”라고 적었다. 강제적인 신체 접촉 만이 성폭력이 아니다. 성적인 언어로 피해자에게 정신적인 상처와 압력을 행사하는 것 역시 일종의 폭력이다. 사제지간, 선후배 혹은 동급생 간, 성적인 언어와 행위로 특정인의 학습권을 침해 하는 것도 성폭력이다. 이같은 대학내 성범죄가 해가 지나도 줄지 않고 있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교수님 말씀이니 어쩔 수 없이…=18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최근 3년간 국립대 교수 법률위반 적발 현황’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성범죄로 징계를 받은 국립대 교수는 2014년 5명, 2015년 11명, 2016년 11명, 2017년(8월 기준) 8명 등 총 35명이었다.

교수들은 학생들의 학점이나 학위인정, 논문통과, 진로때문에 신고하지 못할 것을 알고 교묘하게 자신의 지위를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2015년 대학원에 입학해 졸업한 A 씨는 “지도교수의 폭언과 추행이 더해져 입학 2개월째인 5월부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우울증 약을 처방받아 먹었다”며 “석사학위를 취득하지 못할까, 조교신분에 불이익이 생길까 정신과 치료를 받아가며 참았다”고 눈물을 머금었다.

모범이 돼야 할 교수의 범법행위가 해마다 늘어나고 있지만, 처벌은 미미하다. 정직 3개월 정도의 처분이 내려지거나 아예 징계위가 열리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고압적인 위계문화가 낳은 선후배간 성폭력=대학 내에서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성폭력 유형이다. 새내기 배움터나 과행사, 술자리, 동아리 등의 자리에서 불쾌감을 유발하는 성적 농담 및 음담패설, 술을 따르게 하는 식의 성적 접촉이나 강간 등의 사건이 연일 언론매체를 통해 보도되고 있다.

Y 대학교 단톡방 성희롱 사건, 같은 과 여학생들을 성희롱해 무기정학 등 징계처분을 받은 I 대학교 의예과 남학생 집단 성희롱 사건부터 “오빠는 데이트폭력의 가해자다”라는문구로 알려진 K 대학교 대자보 사태까지. 대학 내에서 일어나는 성폭력은 해마다 되풀이되고 있다.

대부분의 피해학생은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하며 약물치료에 의존한다. 한 피해자는 “이런 일을 겪고 나면 절대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며 “캠퍼스에서 만나는 동기, 선후배 남자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하는 것 조차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옷을 입을 때 조차 혼자 돌아보고, 뒤에서 웃음소리만 들려도 소스라치게 놀라는 등 정신분열 증 초기증세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죄의식 없는 가해자들, 양성평등 의식 확산돼야=한국범죄학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잇따라 불거진 대학 내 성희롱 현상에 대해 ‘양성평등에 대한 무감각’과 ‘성 관련 교육의 부재’를 원인으로 꼽았다.

전문가들은 또 학교 내 성희롱, 성추행 등이 증가한 이유에 대해 선정적인 콘텐츠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성적 대상으로 보게 되는 경우가 생기고, 그에 따라 죄의식 없이 성폭력을 가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단국대 심리학과의 한 관계자도 “많은 문제가 상대방에 대한 존중의식 부재 때문에 발생한다”며 “성적인 희롱을 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묻기 전에 이미 심리적 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행동이다”고 설명했다.

tngus8547@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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