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공수처를 믿지 마세요’

130개 헌법 조문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국가를 믿지 마세요’ 정도가 되겠다. 헌법이 가정하는 국가는 ‘선’이 아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고, 언제든 인권을 침해할 수 있는 믿을 수 없는 존재다.

그래서 헌법은 국가의 권력을 쪼개고, 그 쪼개진 권력도 법률에 따라서 행사하도록 제한했다. 그렇게 기본권이 보장된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논의가 가시화됐다. 법무부가 최근 내놓은 공수처 설치 방안은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권고한 내용에 비해 규모가 축소됐다. 하지만 설치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다.

검찰 개혁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공수처라는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옳은가 하는 의문을 가질 필요가 있다. 권력기관을 하나 더 만들기는 쉽지만, 한 번 생기고 나면 없애기는 쉽지 않다. 애초에 공수처를 만들자는 논의가 왜 나왔는지, 검찰개혁을 말하게 된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충분히 되짚어 봐야 한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동시에 쥔 검찰은 그동안 직접 수사한 사건을 통해 스스로 권력화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래서 그 권한을 남용하지 못하게 쪼개는 게 검찰 개혁의 본질이다. ‘수사기관=국가=믿어서는 안될 존재’라는 도식은 공수처 설치 논의에서도 유지돼야 한다.

검찰 권력을 쪼개자는 논의의 핵심은 기존 ‘특수수사’로 불리는 직접 수사 총량을 줄이는 데 있다. 그동안 검찰은 전체의 5%도 되지 않는 극소수의 직접수사 사건을 통해 형평성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물론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얻었다.

검찰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할 의무도 지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안전장치 역할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 전문 법조인인 검사에게 수사지휘권과 기소권을 부여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서는 사례를 줄이고, 대신 경찰이 인권을 침해하지 못하도록 통제 기관으로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경찰 개혁 논의도 마찬가지다. 정치권력이 일선 수사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벽을 쌓고, 수사 과정에서도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를 준수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까지 수사기관의 문제는 국민을 찌르는 ‘창’ 역할이 아니라 ‘방패’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데서 기인했다. 정치권의 외압에 의해, 혹은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자의적인 수사로 재판에 넘겨진 이들이 무죄 판결을 받고도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은 사례는 일일이 거론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많다.

검찰개혁은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 공수처 설치 논의는 ‘공수처와 검찰, 경찰이 누가 더 수사를 열심히 하나’ 경쟁하는 구도를 전제로 이뤄지고 있다. 물론 이러한 맥락도 이해는 간다. 특정인을 겨냥한 ‘표적수사’ 논란 못지 않게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의혹을 덮었다는 지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검찰의 진짜 힘은 ‘기소하지 않을 권한’에 있다는 얘기도 과장은 아니다. 하지만 이 관점에서만 검찰개혁을 바라보면 사회 온갖 갈등이 검찰로, 법원으로 넘어가는 현상을 해결할 수 없다. 만약 공수처가 수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수사기관을 만들 것인가.

지금 공수처를 보면 첩보 수집 기능만 없을 뿐이지, 폐지된 옛 대검 중수부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사팀의 규모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규모는 공수처가 다루는 사건이 얼마나 되느냐에 따라 상대적으로 달리 평가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수사팀의 성격이다. 공수처는 고위 공직자로 수사대상을 한정하고 있지만, 우리 사회에서 큰 이슈가 될 만한 대형 사건 대부분을 처리할 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 과정에서 연관성만 있다면 공직자가 아닌 개인이나 법인, 기업도 얼마든지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수처는 검찰이 아니지만, 수사를 받는 피의자 입장에선 기관의 명칭이 대검 중수부든, 서울중앙지검 특수부든, 공수처든 아무런 차이가 없는 것이다. 검찰의 권한과 직접 수사 사건 총량을 그대로 두고 공수처라는 수사기관을 하나 더 만드는 게 진정한 ‘개혁’인지는 생각해볼 문제다.

공수처도 언제든 개인의 기본권을 침해할 수 있는 권력기관이 맞다. 그렇다면, 어떤 사안을 수사할 지 선택할 권한을 가지고, 강제수사권과 기소권, 공소유지권을 가진 공수처도 기존 수사기관이 받던 ‘권한 남용 우려’를 같이 받는 게 옳다. ‘국가를 의심할 권리’는 헌법에서 보장한 것이다.

공수처가 개인의 권리를 부당하게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건 지극히 정상적이다. 이것을 ‘공수처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로 매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인권 보장은 국가를 믿지 않고, 여러 통제장치를 마련하는 데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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