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칼럼] 가을에, 걷는 기적

가을엔/너른 들판을 가로 질러/노을지는 곳으로/어둠이 오기 전까지/천천히 걸어 보리라

대학 동창이 보낸 한 편의 시가 카톡으로 날아왔다. 시인 정유찬의 ‘가을에 아름다운 것들’이었다. 첫 문단을 읽자마자, 운동화 쪽으로 시선이 갔다. 시를 다 읽기도 전에 챙이 넓은 모자를 찾아 쓰고 있었다.

너른 들판은 아니지만, 서대문구 안산(鞍山) 자락길을 어둠이 오기 전까지 천천히 걸어보고 싶었다. ‘가을이 왔다’는 인사말을 사람들과 수십 번 주고받았지만, 진작 가을을 제대로 본 것 같지 않았다.

자락길로 향하는 북아현동의 경사면을 숨 가쁘게 올라가니, 물감처럼 화려한 색깔들로 그려진 가을 산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검정색이다, 흰색이다, 무채색 속에서 싸우는 인간들의 세계를 비로소 빠져나온 느낌이었다. 청솔모가 도토리를 찾아 부산하게 움직였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애견과 함께, ‘혼자’들이, 저마다 다른 속도로 걷다가 전망대가 나타나면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곤 했다. 북악산 앞의 청와대, 그 옆의 인왕산, 저 멀리 한강, 산이 평풍처럼 둘러쳐진 거대한 서울의 절경에 사로잡혀, 사람들은 한참동안 갈 길을 잊고 서 있곤 했다.

능안정에서 잠깐 쉬고 있으려니, 산책 나오기 전 읽고 있던 책 내용이 떠올랐다. 노벨 문학상을 탄 가즈오 이시구로의 SF소설 『나를 보내지 마』였다. 소설 속 아이들은 어디를 여행할 지 저마다 꿈꾸면서 성장한다. 하지만 복제인간으로 키워진 그들은 아무 데도 갈 수가 없다. 어떤 미래도 없다.

인간이 필요로 하는 장기를 몇 번이고 죽을 때까지 기증하다 죽어가야 한다. 복제인간인 캐시는 가수 주디 브릿지워터의 노래를 자꾸만 듣는다. 노래 후렴구를 따라 부른다. “Baby, baby, never let me go(베이비, 베이비, 나를 보내지 마!)”

정상을 향해 기다시피 올라가니, 이름을 알 수 없는 새가 하늘을 유유히 날고 있었다. 붉은색과 황금색으로 빛나는 나뭇잎들……가을 빛깔을 가슴 속 깊이 흡수하며 큰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시원한 바람 줄기가 머리칼을 만지고 지나갔다. 나뭇잎들이 파르르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때 나뭇잎 하나가 뚝 떨어져 내렸다. 너무나 무심한 낙하였다. 머지않아 다른 잎사귀들도 숙명처럼 떨어져 내릴 것이다. 나뭇잎들은 붉게 웃고 있었다. 자연은 인간과 다른 방식으로 생명의 기적을 이루어 가는 것일까. 시간의 기적을 믿으며 때를 기다리는 것일까.

많이 걸었다고 생각하며 내리막길로 접어들었다. “걸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습니다.”/ “설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습니다.”/ “들을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말할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살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은 바라지 않겠습니다.”/ 놀랍게도 누군가의 간절한 소원을 나는 다 이루고 살았습니다./ 누군가가 간절하게 기다리는 기적이 내게는 날마다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자신의 기도 낙서장에 적은 글이라고 했다. 아, 하루의 마지막 햇살이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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