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표] 메이플라워호와 트럼프

메이플라워(Mayflower)호는 1620년 9월16일 영국 플리머스항을 출발해 미국으로 향했다. 길이 27.5m인 180t급 포도주 운반선이다. 이 배는 55일간의 항해끝에 그해 11월9일 미국 메사추세츠주 케이프코드 만(灣)에 다다른다. 지금으로부터 꼭 397년전이다.

반도(半島)인 케이프코드는 대구(cod)가 많이 잡혀서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 끝 레이스곶(串) 부근에 있는 프로빈스 타운엔 1620년 메이플라워호가 미국에 들어왔다는 점을 기념하는 85m 높이의 탑이 세워져 있다.

배의 수리 등을 거쳐 탑승자인 청교도 등 이민자 102명(청교도 비신도 66명 포함)이 육지에 미국 내린 것은 12월21일이다.


첫 이민자들은 배에서 내리기 전 서약을 하고 존 카버를 최초의 지사로 선출한다.

이 메이플라워 서약(Mayflower Compact)은 미국의 첫 헌법이다. 모든 것을 투표로 정하는 민주정치를 근간으로 하며, 구약성서에 나타난 ‘언약(covenant)’의 숭고한 뜻을 차용했다. 미국 헌법의 초안은 이렇듯 이민자들이 만든 것이다.

이듬해 봄까지 절반이 질병과 추위, 굶주림으로 사망했다. 그러나 4월 메이플라워호는 한명도 태우지 않은 채 영국으로 돌아갔다. 힘겹지만 아무도 영국에 돌아가지 않았을 만큼, 이민자들의 미국 개척 의지는 강했다.

원주민들이 살던 흔적을 발견해 터전으로 삼은 점과 나중에 조우하게 된 원주민들로부터 경작 기술을 배운 것은 더 이상의 질병,기아 사망자을 양산하지 않는 중요한 계기였다. 한 미국 역사가는 ’이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위대한 자비로 기록되어야 한다‘고 일갈했다.

도날드 트럼프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이 가속화하는 점, 미국 내 테러발생 수가 늘어나는 점이 상호 상승작용을 일으키는 분위기이다. 트럼프의 자극적 배타정책은 분명 메이플라워 서약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함영훈 선임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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