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관행이라는 달콤한 유혹

나는 며칠 전 한 공공기관의 관리자급 승진심사를 위해 인사위원회에 참석해 인사평가와 승진에 대한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했다. 20분 정도 논의끝에 조직의 관행으로 결론을 내렸다. “늘 해왔던 대로 하면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내부 인사위원회의 결론이었다.

이런 식의 문제해결 방법은 우리 주변에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10월 19일, 가수 겸 방송인 조영남이 대작 의혹과 사기 혐의와 관련해 1심에서 유죄를 받았다.

전문가 자격으로 증언한 진중권도 “르네상스 시절에도 조수를 썼다. 조수를 쓰는 것은 미술계의 오랜 관행”이라며 “잘 알려진 작가들은 모두 조수를 쓴다고 보면 된다”고 조영남의 주장을 뒷받침했지만 재판부의 시각은 달랐다. 해석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관행이 조영남의 발목을 잡고 말았다.

관행이란 남의 탓으로 문제를 전환해 집단의 이기를 품으려는 정체성없는 영혼과 같다. 혹시 ‘임신 순번제’라는 말을 들어 본적이 있는가? 임신 순번제는 의료 기관에 종사하는 간호사들에게, 순서를 정해 임신하도록 권유하는 관행을 말한다. 출산 휴가나 육아 휴가가 한꺼번에 몰려 인력 공백이 생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인데, 병원의 만성적 간호 인력 부족 문제가 낳은 기형적인 관리 체계라고 볼 수 있다. 낡은 관행이 폭 넓게 우리사회를 지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조직에서 임신 순번제와 같은 불합리한 관행에 피해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개선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듀크대 댄 애리얼리 교수는 다음과 같은 실험을 했다. 한 대학 기숙사의 냉장고 절반에는 6달러짜리 콜라 한 팩을, 또 다른 절반에는 지폐 6장을 넣어두고 학생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지켜봤다. 그 결과 냉장고에 있던 콜라는 3일만에 다 없어진 반면, 현금은 학생 누구도 손을 대지 않았다.

애리얼리 교수는 돈을 가져가는 것은 도둑질이지만 콜라 정도는 남의 것이라도 먹어도 된다는 것이 학생들의 용인되는 수준이고, 이 수준에 따라 학생들이 콜라를 마시는 작은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해석했다. 조직에서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많은 구성원들로부터 ‘그 정도는 해도 돼’라고 용인되는 수준, 이것이 바로 관행이다.

관행은 나 혼자의 기준으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조직의 많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수준으로 정해지기 때문에 나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심리적으로 안전하다고 판단한다. 지난해 웰스파고의 유령계좌 스캔들도 바로 이런 관행에서 비롯됐다.

2012년 웰스파고는 무려 5000 명의 직원이 고객 동의없이 유령계좌를 만들었다. 웰스파고의 경영진은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음에도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결국 웰스파고는 이 일이 외부에서 먼저 밝혀지면서 더욱 큰 타격을 입어야 했다.

관행은 당장은 이득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하나의 이득이 썩어 버리면서 모두 조금씩 곪아버린 사과는 한 박스를 다 내버려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세상에 영원한 비밀이 없듯 관행도 영원함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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