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거니, 명주가 되다 <14>] 전세계인에게 200년 동안 사랑받은 ‘조지 발렌타인’

 -최고의 명품 위스키 ‘발렌타인’

-연간 판매량 7억병…유럽 1위ㆍ세계 2위

-발렌타인 마스터 블렌더는 200년 간 5명뿐

[헤럴드경제=장연주 기자] 어떤 일이든 자신의 이름을 건다는 것은 굉장히 책임이 막중한 일이다. 자신과 가문의 선대, 후대에까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여기 자신의 이름을 걸고 오로지 술 하나에 인생을 건 사람들이 있다.

발렌타인 설립자 조지 발렌타인(George Ballantine)

기네스, 조니워커, 스미노프 등 한번쯤 들어본 이 술들은 사실 사람의 이름이다. 누군가에게 ‘인생술’로 칭송받는 명주 중에는 창시자의 이름을 건 술들이 상당히 많다. 이 술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들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수백년 간 이 술이 후대에 이어질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한 잔의 술을 위해 인생을 건 사람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본다.

<14>발렌타인=세계적인 스카치 위스키로 손꼽히며 200여 년의 품격과 명성을 이어온 발렌타인(Ballantine’s). 발렌타인은 현재 1년에 약 7억병 판매된다. 이는 유럽권 1위이자 세계 2위 브랜드로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맛의 스카치 위스키로 꼽힌다. 풍부한 바디감과 완벽한 밸런스로 2002년부터 지금까지 약 200회 이상 국제대회에서 수상했다. 발렌타인 파이니스트부터 발렌타인 40년까지 총 8개의 포트폴리오를 보유해, 세계에서 가장 광범위한 브랜드를 갖고 있다.

전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고의 명품 위스키 ‘발렌타인’의 역사는 1822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의 한 13살 소년으로부터 시작됐다. 위스키의 역사가 된 조지 발렌타인은 1809년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13살이 되던 해 자신 만의 큰 비전을 펼치고자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로 이주했다.

발렌타인 최초의 상점

이후 식료품과 와인 전문가인 앤드류 헌터 밑에서 5년 간 견습기간을 거치며 훌륭한 와인을 구별해내는 능력과 좋은 퀄리티의 몰트 위스키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갖게 됐다. 이 기간 동안 밀과 맥아, 밀가루 등을 직접 다루기도 하며 손님들과 신사적으로 거래하는 방법을 익혔다. 그의 마스터인 헌터는 조지 발렌타인을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매너가 좋고 똑똑하며 반짝이는 눈빛 속에서 훗날 훌륭한 기업가의 모습을 봤다고 평가했다.

견습과정을 마친 조지 발렌타인은 1827년 19살의 나이로 첫 식료품점을 열고 발렌타인 위스키 사업을 시작하게 된다. 단골에게 선물하기 위한 위스키를 가져다 놓았는데, 이 위스키가 입소문을 타면서 단골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에 조지 발렌타인은 위스키에 대한 미래 비전을 확인하고 1831년 캔들메이커스로(Candlemaker’s Row) 근처에 두번째 매장을 열며 점차 명성을 쌓아갔다. 이후 1836년 고급 테일러드 숍과 서점들이 주로 자리잡은 사우스 브리지(South Bridge)로 이주해 고급 위스키에 대한 수요가 많은 상류층 고객에게 최상의 위스키를 제공하게 된다.

1853년 조지 발렌타인은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이상적으로 혼합시킨 블렌디드 위스키를 만들어내는 획기적인 기술을 개발했다. 조지 발렌타인의 이런 노력은 점차 기품있고 세련된 상류사회로부터 인정받게 됐다. 마침내 영국 왕실에서도 그 명성을 신뢰하게 된다. 이때부터 조지 발렌타인은 그의 이름 ‘발렌타인(Ballantine’s)’을 위스키 라벨에 표기해 사용했다. 이는 지금까지도 좋은 위스키 품질에 대한 그의 약속이자 확신의 표시로 여겨진다.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최고 명품에게만 수여되는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

그리고 마침내 1895년 발렌타인은 빅토리아 여왕으로부터 최고 명품에게만 수여되는 ‘로열 워런트(Royal Warrant)’를 수여 받는다. 이는 발렌타인 브랜드 명성에 걸맞은 영원한 보증수표와도 같다. 이후 스코틀랜드 문장원(The load Lyon)은 1938년 품격 높은 신뢰를 상징하는 ‘헤럴딕 암즈 문장(Grant of Heraldic Arms)’을 발렌타인 만의 유서 깊은 문장으로 수여하며 발렌타인을 ‘스코틀랜드 귀족사회의 품격 있는 브랜드’로 인정했다. 헤럴딕 암즈 문장은 스코틀랜드 문장원에서 귀족사회의 품격있는 브랜드로 인정하기 위해 수여하는 문장 중 가장 높은 문장이다. 이를 계기로 발렌타인은 스코틀랜드를 넘어 해외에서 인정받는 세계적인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다.

발렌타인의 사업은 창업자 조지 발렌타인의 정신을 아들에서 손자로 대를 이어갔다.

조지 발렌타인과 그의 아들이 200여 년을 이어오는 독자적인 발렌타인 브랜드를 구축한 데에는 남다른 사고가 있었다. 그들은 상징적인 건물을 선택해 상점을 개설하고 자신 만의 마크를 달았다. 상점의 겉모습 역시 색다르게 꾸몄다. 창문의 중간까지 검은 메시 프레임을 설치하고 메시에 옅은 황금색으로 이름을 달아 그의 상점은 마치 은행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국에서는 24시간 거위의 호위를 받는 발렌타인 저장창고가 가장 안전한 곳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는 19세기 발렌타인 가문이 위스키 숙성창고에서 술을 훔치는 좀도둑들로부터 제품을 보호하기 위해 청각이 예민한 100여 마리의 거위를 이용해 밤낮으로 수상한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것에서 유래한다.

이처럼 발렌타인의 역사는 새로운 사고를 지향하고, 한결같이 일관된 맛과 향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조지 발렌타인의 깊은 장인정신(Craftsmanship)을 바탕으로 형성됐다. 발렌타인의 이러한 장인정신은 지금까지도 마스터 블렌더를 통해 이어지고 있다. 

발렌타인 30년

발렌타인 마스터 블렌더는 시대를 초월한 변함없는 발렌타인 위스키 고유의 스타일을 유지하는 블렌딩 비법을 전수받은 유일한 사람으로, 그 전통과 역사를 보존하고 계승하는 발렌타인의 살아있는 수호자이다. 발렌타인의 마스터 블렌더는 200여 년의 역사 동안 오직 5명 만 존재했다. 이들은 발렌타인 위스키의 품질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불변하는 가치를 대를 이어 전수하는 숭고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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