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포럼] 시각장애인이 고흐의 그림을 즐긴다?

장애인은 장애인 취급 받는 것은 극도로 싫어한다. 그들은 다만 조금 불편할 뿐이다. 이러한 개념에 맞춰 최근 미국과 유럽, 일본 등에서 소리 없이 팔려가는 시계가 있다. 미국 워싱턴의 이원(EONE)에서 만든 ‘브래들리 타임피스(Bradly Timepiece)’라는 시계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시계라? 만약 당신이라면 시각장애인을 위한 어떤 시계를 만들겠는가? 촉각으로 시간을 인지해야 되니 점자로 시계를 만들고, 크기도 가급적 크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지 않았는가?

2004년도에 ‘장애인을 위한 세탁기’라는 컨셉으로 세탁기가 출시됐다가 장애인들에게 뭇매를 맞았다. 결국 해당 기업은 즉시 ‘장애인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세탁기’로 마케팅을 수정 했다. 최근 삼성전자가 약자나 장애인을 위한 전시회나 제품을 출시할 때 ‘Designed for all(모두를 위한 디자인)’이라는 가치를 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이제 시각장애인을 위한 어떤 시계를 만들어야 할까? 이원의 김형수 대표는 브래들리 타임피스라는 시계를 개발하면서 ‘쿵’하고 얻어맞는 기분이 몇 번이나 들었다고 한다. 김 대표는 시각장애인이라면 당연히 점자를 읽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각 장애인 중에서도 나이가 들면서 앞을 못 보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는 손의 감각까지 무뎌져서 아예 점자 배우기를 포기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치로 표현하자면 시각장애인 10명 중 8~9명 점자를 못 읽는다.

2014년 그래미 시상식 공연에 살아있는 팝의 전설로 불리는 스티비 원더가 브래들리 타임피스를 차고 공연을 했다. 스티비 원더는 시각장애인이다.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됐는가? 보통 시각장애인은 앞을 못 보니 시계를 만들 때도 패션이나 디자인 보다는 기능위주로 만들면 될 것이라고 판단한다. 스티비 원더가 찬 시계는 시계의 본래 기능보다는 상대를 위해 배려다. 배려의 시계를 찬 것이다.

그래서 김형수 대표는 시침도 분침도 없는 시계. 크기가 다른 구슬 두 개가 자판 끝 부분을 돌면서 움직이는 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는 시계를 만들었다. 점자를 몰라도 누구나 시간을 읽을 수 있다. 적극적 관찰과 배려를 융합해서 탄생된 브래들리 타임피스는 이제,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등 18개국으로 팔려나간다.

이런 분위기는 제품을 넘어 예술로도 전이 된다. 얼마전 시각장애인을 위한 작품전이 서울에서 열렸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그림을 보지?’ 이 전시회는 보인다는 이유로 사물을 특징을 단정해버리는 상상력의 한계와 빈곤을 여지없이 타파한다. 작품전의 영어 타이틀은 ‘An-other way of seeing’도 이런 맥락에서다.

시각장애인은 앞을 못 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눈으로 보지는 못하지만 만지고 냄새를 맡아가면서 사물을 관찰한다. 보이지 않는 눈, 마음의 눈을 통한 관찰에는 편견이 없다. 보이니까 믿어버리는 시각의 자만이 이들에게는 없다. 시각장애인들도 얼마든지 고흐와 로댕을 즐길 권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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