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대부업체 채권 회수빌미 원천차단

당정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 시행의미
정부, 상환력 없는 채무자 빚 100% 감면
채권 매각·과잉 추심 등 악의 고리 끊고
신규 장기연체자 발생 자체를 막아

금융사 뜻밖의 이익은 공공재원으로 활용
빚감면 초첨 둔 역대 정부 정책과는 구분

29일 발표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의 핵심은 채권을 가진 금융회사 또는 대부업체가 빌려준 돈을 일부라도 회수하려는 미련을 ‘정부기금 인수→채권 소각’으로 원천 차단한다는 데 있다. 채무자가 갚아야 할 원금이나 이자를 줄여주는데만 초점이 맞춰졌던 과거 정부의 ‘빚 탕감’ 정책과 구분되는 지점이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역대 정권은 서민고통 경감 차원의 빚 탕감 정책을 되풀이해왔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1987년과 1992년 대선 당시 ‘농가부채 탕감’ 공약을 내놓은 데 이어, 집권 성공 이후인 2001년 특별법을 제정해 일부 채무자의 상환 연기와 금리 인하를 해 준 것이 대표적인 예다.

2008년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당시 ‘720만 신용 대사면’을 약속했다. 저신용자(신용등급 7~10등급)의 채무 중 이자를 감면해주고 금융채무 불이행자(신용불량자) 연체기록을 말소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러나 이후 정책 실행 과정에서 대상자가 대폭 줄었고, 당초 목표치의 10분의 1인 연체자 72만명(채무 원금이 3000만원 이하)만이 이자 감면 혜택을 받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정부 출범 한 달 만인 2013년 3월 29일 국민행복기금을 설립했고, 채무자들이 감아야 할 원금을 일반채무자 최대 50%, 기초생활수급자 최대 70%까지 감면해줬다. 다만, 당초 322만명이었던 신용회복지원 목표는 이후 66만명으로 크게 축소됐다.

역대 정권의 빚 탕감 정책의 초점이 ‘빚을 줄여주는’ 데 있었을 뿐더러, 정책 추진과정의 잡음 탓에 목표치도 대부분 맞추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시행되는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은 우선 정부가 나서서 채무자의 빚을 100% 없애준다. 원금 1000만원 이하·10년이상 연체·상환능력 없음 등 3가지 조건이 모두 맞아떨어져야 하지만, 최근 10여년 간 나온 빚 탕감 정책 중 가장 파격적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다.

여기에는 금융권의 ‘회수 욕심’이 곧 장기연체의 출발점이라는 인식이 짙게 깔렸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금융회사가 매각한 가계 부실채권규모는 연평균 약 3조원에 달한다. 채권은 주로 대부업자(42%)와 자산관리회사(31.3%)에 매각됐다. 이렇게 채권을 사들인 대형 대부업자나 제2금융권은 채무자 추심을 통해 충분한 이윤을 남긴 뒤, 다시 영세 대부업자와 매입채권 추심업자에 되판다.

이번에 나온 지원대책처럼 정부기구가 금융회사 또는 대부업체의 채권을 사들여 정리한다면 ‘회수 악순환의 고리’가 끊어질 수 있다. 소멸시효 연장 시 상환능력 심사 의무화나 취약계층에 대한 원칙적 소멸시효 연장 제한이 추진되는 가운데, 소멸시효완성채권 매각·추심 금지가 법제화 되면 신규 장기연체자 발생도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정부가 대부·추심업체 등의 채권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보다 높은 값을 받기 위한 업계의 몽니가 현실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일시적 연체가 장기연체화 되지 않도록 부실채권의 추심·매각 과정의 규율을 강화하고, 채무조정제도를 개선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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