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판사와 기자의 공통점

얼마 전 김명수 대법원장은 출입기자들과 만나 덕담으로 ‘판사와 기자의 공통점’에 대해 설명한 적 있다. 진실을 추구한다는 것, 그리고 글로 이야기한다는 점에서 비슷하다고 했다. 판사는 판결문으로, 기자는 기사로 이야기한다는 의미다.

김 대법원장이 언급하지 않은 것 가운데 ‘직급’이 없다는 것도 판사와 기자의 공통점이다. 대법원장과 대법관을 제외한 모든 법관은 판사다. 법원장이나 부장판사니 하는 건 직급이 아니고 직책이다. 기자도 편집국장 밑으로 부장, 차장 정도로 나누긴 하지만 모두 기자다.

이들 직업에 ‘급’을 구분하지 않는 건 직업 특성상 필수다. 누구에게 배정되건 똑같은 판단을 받을 것으로 기대돼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판사에게 재판을 받으면 불구속이 될 게 구속이 되고, 누군가가 담당하면 징역 3년형을 받을 게 5년형을 받아선 안된다. 재판이 판사 개개인의 ‘급’이나 성향에 따라 달라진다고 믿으면 사법부에 대한 신뢰는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자란 직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누가 인터뷰를 하더라도 객관적이고 공정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평기자가 취재를 하든, 부장직급 고참 기자가 하든, 기자 성향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사는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나온다는 믿음을 줘야 언론사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최근 법원이 구속적부심을 통해 검찰 핵심 피의자를 잇따라 석방한 게 논란을 일으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영장전담 판사에 의해 구속영장이 발부되고 불과 며칠 만에 같은 법원의 다른 판사가 석방 결정을 내렸다. 피의자의 혐의를 벗길 새로운 증거가 나타난 것도, 피해 사실이 달라진 것도 없다.

구속영장이 발부될 때와 석방이 결정될 때 사이에 달라진 건 판사뿐이라면 답은 명확하다. 국민들은 ‘재판이라는 게 어떤 판사가 담당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구나’ 생각할 수밖에 없다. 사법부에 대한 신뢰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법원은 이에 대해 직접적인 해명은 하지 않고 있다. 모 판사는 사적인 자리에서 “별다른 사정변경이 없었더라도 이번 결정이 구속적부심의 본래 취지에 부합 한다”고 했다. 구속적부심이 헌법에 규정된 피의자의 고유한 권리로, 구속의 적법성을 법원에서 다시 한번 판단 받을 수 있도록 한 이상 구속적부심의 판단도 존중해야 한다는 논리다. 마치 구속적부심이 영장실질심사의 항소심 같은 것으로 보는 듯한 말이다.

그렇다고 해도 앞서 지적한 것과 똑같은 함정에 빠진다. ‘재판이라는 게 판사에 따라 제각각일 수 있구나. 그렇다면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 재수없이 이상한 판사 만나면 어쩌나…’ 논란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

법원 내부에서도 반발이 꽤 있는 것처럼 보인다. 김동진(48ㆍ사법연수원 25기) 인천지법 부장판사는 지난 2일 페이스북에 이례적으로 양심고백을 했다. 그는 “서울지법 형사수석부의 3회에 걸친 구속적부심 석방결정에 대해 납득하는 법관을 한명도 본 적이 없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이어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을 특정한 고위 법관이 반복해서 하고 있고, 그 법관의 권한행사가 서울시 전체의 구속실무를 손바닥 뒤집듯이 마음대로 바꾸어 놓고 있다”며 해당 부서를 책임지는 신광렬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 부장판사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대법원장에까지 향했다. 앞선 1일 한 행사장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재판 결과를 과도하게 비난하는 행위는 헌법정신과 법치주의에 어긋난다”고 말한 김명수 대법원장을 향해 “이것을 비판하는 것이 왜 정치행위라는 식으로 폄훼되어야 하는가? 벌거숭이 임금님을 향하여 마치 고상한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호도하는 것은 일종의 위선”이라고 날을 세웠다.

김 판사의 비판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논평하지 말아야 할 법관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었다는 지적이 있지만, ‘사법부 신뢰’를 걱정하는 용기있는 목소리라는 평가도 나온다.

이번 구속적부심 사태가 아쉬운 점은 국민에 대해 적극적으로 설명하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사법부 신뢰에 큰 타격이 될 만큼 여론이 비등하고, 사법부에 보수세력이 작동하기 시작했다는 등 온갖 음모론이 난무하는 상황임에도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김 대법원장은 법관이 되지 않았으면 기자를 했을 것이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기자는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해 논란이 있으면 후속보도를 하고, 오보가 나면 해명하고 정정보도를 낸다. 지금이야말로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그저 시간이 지나면 지금 논란은 사그라들지 모르지만 국민들의 오해내지 사법불신은 깊어질 수밖에 없다. 

jumpcut@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