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30년, 한국경제 30년]‘청년 이건희’…30년 前 ‘초일류 기업’ 약속 지키다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지난 1993년 6월. 한편의 보고서를 읽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눈에 불이 켜졌다. 후쿠다 고문의 보고서였다. 보고서를 한줄 요약하면 ‘삼성은 3류’라는 얘기다. 10차례 넘는 보고에도 회사는 바뀌지 않았고, 부서별 문턱은 높았으며 책임은 떠넘겨야 하는 것이라 직원들이 생각하고 있다 쓰여 있었다. 자동차산업 시찰을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행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이었다.

이후 ‘프랑크푸르트 선언’이 나왔다. 이 회장은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회의 준비를 지시했다. 삼성 전체를 샅샅이 봐야겠다는 심산이었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에 삼성 임직원 200명이 긴급 소집됐다. 68일 동안 회의가 이어졌다. 회의 참여 총원은 1800명, 회의와 대화는 350시간이나 계속됐다.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바꾸라’는 얘기도 그때 나왔다. ‘후쿠다 보고서’는 24년 후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만드는 방아쇠 역할을 했다. 

[사진=이건희 회장이 지난 1987년 취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해 ‘반도체 제왕’ 인텔을 처음으로 눌렀다. 매출과 영업이익 모든 부분에서다. 우연치 않게 인텔은 이 회장이 ‘신경영’을 선언한 1993년 처음으로 반도체시장 매출 1위를 기록했다. ‘신경영 선언’ 후 삼성전자가 인텔을 꺾고 반도체 왕좌에 오르는데 꼬박 24년이란 시일이 걸린 셈이다.

삼성의 역사는 한국 경제 발전 역사와 궤를 같이 한다. 이 회장이 처음 삼성그룹 회장에 오른 1987년 한국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319조원, 삼성그룹 매출은 17조원이었다. 2016년 한국의 실질GDP는 1508조원, 삼성그룹 16개 상장사의 2016년 매출총액은 329조원이다. 삼성그룹이 담당하는 한국의 실질GDP 내 비중은 30년만에 5%에서 21% 수준으로까지 4배 이상 커졌다.

문과생(경영학)이던 이 회장의 통찰은 공학분야인 세계 반도체부문에서도 빛났다. 1990년대중반 반도체 업계는 공정 기술 발전 방향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밑으로 파내려가는 기술(트렌치)을 채택할 것이냐, 쌓아올리는 기술(스택)을 채택할 것이냐를 두고서다. 선택은 그룹의 명운이 달린 것이었다. 투자금만 조단위를 헤아렸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지하로 파는 것 보단 쌓는 게 더 쉽지 않겠냐”고 했다. 결론은 심플했고 정확했다.

트렌치 방식을 채택했던 인피니언, 난야, 도시바, IBM 등은 기술 난관에 봉착했고 난야는 결국 파산 선언 후 매각되고 말았다. 현재는 스택 기술만이 살아남았다.

삼성의 ‘인재경영’ 철학 역시 그의 젊은 시절 확고한 신념에서부터 시작됐다. 1981년 39세 ‘청년 이건희’는 삼성임원특별 세미나에 참석해 “우리 집안에는 삼고초려 가훈이 있다. 우수한 사람 영입을 위해선 모든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삼성은 최고의 인재를 뽑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올해 삼성전자 직원 연봉은 1억700만원으로 상장사 가운데 최고다. 초임 상무 연봉은 1억5000만원 수준에, 성과급과 제공되는 승용차까지 계산하면 2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청년 이건희는 인간미도 유독 강조했는데, “사람은 매력이 있어야 한다. 매력이 없으면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 상사든 친구든 후배든 누구나 인간미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으로 복귀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지난 2010년 2월 8일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함께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밴쿠버로 출국하는 모습. 이 회장은 ‘잘 다녀오시라’는 시민들의 인사에 웃음으로 답했다. [사진=연합]

이 회장은 1987년 12월 1일 호암아트홀에서 열린 취임사에서 “미래지향적이고 도전적인 경영을 통해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다”고 했고, 그의 약속은 30년 후 사실로 입증됐다.

삼성그룹의 직원수는 18만명을 헤아리며 16개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455조원을 넘는다. 협력사는 140여개에 직간접 효과까지 고려하면 90만명이 삼성 관련업무에 종사한다. 삼성그룹의 지난해 매출은 한국의 국가예산에 육박하는 330조원 가량이다.

세계적인 브랜드 컨설팅그룹 인터브랜드는 ‘삼성‘(SAMSUNG)’의 가치를 562억 달러(2016년 약 61조원)로 평가했다. 100대 브랜드 중 6위다. 삼성전자 한 곳이 올해 3분기까지 국가에 낸 법인세는 5조4780억원에 이른다. 삼성그룹 시총 비중은 국내 전체 상장사 시총의 20% 안팎을 넘나든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은 삼성 변신의 첫발이었다. 그것이 없었다면 삼성은 일반 종합가전회사에 머물렀을 것이다. 삼성의 오늘은 이건희 회장의 영향이 압도적이었다”며 “일례로 2012년에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일본 7개 가전전자회사의 총 이익을 2배 이상 넘어섰다. 부디 와병중인 상황이 개선됐으면 하는 바람이다”고 말했다.

h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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